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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Mar 30. 2017

아쉬움, 다시 여행 가고 싶게 만드는 묘한 감정

싱가포르 4.5일

여행 사진에 대한 코멘터리 방식의 글입니다. 세세한 여행 정보가 담긴 글은 아닙니다. 사진과 글을 통해 제가 느낀 싱가포르, 여행의 느낌들을 같이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은 싱가포르 여행 4.5일 차 기록입니다.

1일 : https://brunch.co.kr/@chaeminc/428

2일 : https://brunch.co.kr/@chaeminc/429

3일 : https://brunch.co.kr/@chaeminc/431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haeminc/ 에 여행 사진 한 장에 짧은 글을 올리는 중입니다.


런던에서 파리까지 여행기를 담은 제 책 <여행을 일상으로, 담다 Vol 1>을 아래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책 쓰기 수업을 듣고 소량으로 초판을 낸 것이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혼자 쓰고 담고 편집한 거라 부족한 부분이 제법 있긴 합니다. 그래서 다음 판은 개정해서 내려고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다 팔리면 얼른 해볼게요.. :)


http://www.nomadlog.net/product/detail.html?product_no=22&cate_no=1&display_group=2





여행 마지막 날은 항상 바쁘다. 못 가본 데가 생각난다. 사야 할 것들이 떠오른다. 시간은 없다. 선택은 해야 한다. 일단 간단한 선물을 사러 가기로 했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여행 갔는데 주위에 선물을 사주는 이유는 무얼까. 남들이 다 하고 있어서 하는 거 같긴 한데. 남들이 사준 선물을 받을 때 고맙긴 한데.


내가 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 어떤 걸 봤는데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때 사 오는 선물은 당연히 말할 게 없다. 다만 여행을 갔으니 선물을 사 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의문이 들었다.


이 의문에 해결을 아직 못 봤으니 오늘은 사러 가기로 한다. 가는 길에 발견한 풍경. 이 나무 많은 곳의 자연스러움에도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다. 죽은 나무를 자르고 생기 있는 나무만 남기는.


동시에 내가 생각한 자연스러움엔 어쩌면 자연스러움이 없었을지 모른다. 아직 젊은 내가 모든 걸 젊게 생각하고, 젊은 사람의 시각으로만 보고, 아주 어리거나 나이가 든 시각을 나도 모르게 배제하듯. 내가 생각한 자연스러움엔 푸르른 생기로움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분을 일하게 한 사람의 머릿속에도 같은 생각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생각한 자연스러움이 내게도 일맥한 것일지도. 우리의 자연스러움은 같이 서로 교육시키고 당해서 학습한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움일지도.




건물의 보안을 맡는다는 직책과 왜소한 체격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꼭 풍채가 좋아야 보안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체격 때문이었을까. 왜소하게 보이는 자세 때문이었을까. 오전임에도 노곤해 보이는 뒷모습 때문이었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힘내야지, 우리 다 한 사람의 몫을 해내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인도 많이 오는 큰 쇼핑몰에 왔다. 이마트 같은 곳이랄까. 아니면 동네에 있는 중형 슈퍼마켓의 대형화 버전이랄까.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OWL 밀크티는 이미 동나 있었다.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것들을 사 왔다. 여기는 한국보다 봉투가 얇다. 그냥 손으로 뜯으면 바로 찢길 정도. 여긴 신기하게 케이블 타이로 묶어서 준다. 이유가 있을 텐데.


여기서 본 신기한 물건들을 시간을 내어 하나씩 먹어보고 했으면 재밌을 텐데. 두리안 향이 나는 과자도 있고(...)



원래 가려했던 카페에 이제야 갔다. 뭔가 부티나는 동네 안에 있었다.



여행자들 뿐 아니라 이미 유명하 카페인가 보다. Roasters라는 이름을 가진 것처럼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 보인다. 한국에서도 커피 자체에 관심 있는 카페가 있고 그냥 '카페'를 하는 카페가 있듯.



처음에 사람이 많은 듯해서 2층으로 올라갔다. 자리가 없었다. 각기 혼자 온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취향인 것 같은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드립 커피와 더치커피에 출출해서 수제 버거를 먹었다. 커피도 커피지만 버거가 꿀맛. 꿀꿀맛. 하. 커피 내리는 장면을 소심히 찍으려고 하자 맘껏 찍으라고 했다. 싱가포르 영어라 내가 잘 못 알아들었지만 커피에 관심 있냐는 말로 커피 이야기를 했다.


커피를 내려주던 이는 싱가포르에 꼭 가봐야 하는 카페를 추천해주었다. 하나는 오늘 쉬는 날이었고 하나는 못 알아들었... 그 마음이 고마웠다. 뭐랄까, 그 덕질 하는 게 서로 같은 걸 알았을 때 통하는 느낌, 같은 드라마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느낌이랄까. 내 언어가 조금만 더 준비됐어도 싱가포르 커피 친구가 생겼을지도.




드립 커피 방식이 서구 방식 보단 일본 느낌이 난다. 한국에선 아직 일본식이 많고 나도 입문을 그렇게 했어서 익숙하다. 맛있게 마신 커피 원두를 사 왔다. 아 내일 아침에 마셔야지.



어제 쉬는 날이어서 못 간 서점 다시 갔다. 가는 길을 어제와 다르게 아무렇게나 가다가 발견한 벽화. 싱가포르스러움이 이런 건가 보다.



인상 깊은 책들이 많았다. 독립 출판한 아기자기한 편집샵이 안에 있다. 트래블라인에도 언급되던 곳. 나도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어 봐서인지 책 하나하나 살펴보게 됐다. 대단한 책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많이 본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보지 못한 감성의 책들이 많아서 눈에 담아 왔다. 다음 책을 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몇 장의 종이의 출력해서 간단한 이야기나 사진을 담은 소책자를 이렇게 판다. 소금 간이 된 무언가를 먹은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찍고 인터뷰를 담은 책도 있었다.


이 책의 가치를 느낀 만큼 내라는 것.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작가에게 무서울 수 있는. 내 책에 매긴 가치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는 쉽사리 생각하기 어렵다.


실제로 책을 사신 분과 연락이 닿았는데, 받으셨단 이야기를 듣고 노심초사하게 됐다. 만족하셨으려나.




한창 책 보다 다시 출출해서 카페를 왔다(...) 여행 마지막 날인 것만 빼면 제법 여유로운 일정. 여기 카페는 원두를 아까 들른 카페의 것을 쓴다고 한다.



플랫 화이트와 아이스 라떼를 시켰다. 프렌치토스트에 베이컨과 바나나와 메이플 시럽. 하나하나 다 맛있는 것을 맛깔나게 모아놓으니 맛없을 리가.



카페에서 돌아와 호텔에 왔고 우리 셋이서 다툼이 있었다. 모든 일정을 오프해야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밥이라도 잘 먹는 것이었다. 한식 먹고 싶은 걸 여행 동안 내비친 엄마의 의견을 이번엔 들어야겠다 싶어서 근처 한식당을 찾아서 갔다.


사실 내 취향은 이런 곳이었는데. 저기서 처음 보는 거지만, 딱 봐도 내 취향일 거 같은 메뉴를 시키는 그런 것.



<김대문 식당> 다른 데는 이름을 잘 안 적지만 여긴 검색해서 나와야 하기에 적는다. 여기 식당 사진은 보정하기도 조금 마음이 어려운 곳. 여기 방문한 외국인은 이 식당이 내놓은 한국 음식을 한식이라 생각할 것이다. 먹어보니 딱 김밥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맛. 가격은 그 이상. 친절은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없다. 주문받으시는 분에게 짜증 받는 건 만국공통..  음식 들고 온 트레이가 잘 보일지 모르겠다. 공깃밥은 가격 별도다. 찌개를 시키고 공깃밥 시킬 돈이 없으면 찌개만 먹어야 한다(...). 반찬은 3개가 있는데 그중 1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 법적인 문제로 가라, 가지 말라는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싱가포르에서 마지막 음식이 이것이었다니.


엄마가 생각한 한식은 조금 더 정갈한 그런 진짜 한국에서 먹는 한식이었다. 나는 그냥 이 정도 까진 아니고 이거보다 나은 정도는 생각했는데. 정보가 없었다. 다른 누군가 검색한다면 이 글을 보고 판단의 근거를 가질 수 있길.



먹고 호텔에 맡긴 짐 찾아서 공항으로 왔다. 공항 내 전철이 귀여워서 찍었다(...)



잘 안 보일 수 있지만 일본 학교에서 전체 여행을 온 것 같다. 검은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수 백 명이 있어서 놀랐다. 동남아권이긴 하지만 여행을 여기로 오다니 스케일이 조금 있군. 요새 수학여행으로 한국에서 제주도 가는 게 코스라면 일본 사람들은 어디로 가려나. 홋카이도 정도가 그런 느낌인가?



세상을 다 가진 아이.



아침 7시쯤 인천에 도착했다. 일출의 과정에 도착했다. 아, 이때는 왜 내가 창가에 앉지 않았나 싶었다. 다음 여행에 내가 일출과 일몰 시간에 비행기를 탄다면 꼭 창가에 앉겠단 생각을 했다.


오는 비행기에서 있던 일이 하나 있다. 인천행이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 사람이 많았다. 한 남녀가 내 대각선 뒤에 창가 쪽에 앉았다. 이륙할 때부터 남자가 시종일관 허풍과 허세(...) 가득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기준에 제법 큰 목소리로. 그 앞에 있던 사람은 이어폰과 헤드폰을 끼고 있어서 못 듣는 것 같았고, 앞 앞사람도 시끄러웠는지 계속 뒤돌아 봤다.


참다 참다 승무원 분에게 조용히 이야기해달라고 말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영어로 해야 했다...). 여자분이셨는데 알긴 알겠는데 어쩌냐 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알겠다고 하고 사라지셨다. 근엄해 보이는 남자분과  한참 이야기하다 남자 승무원이 내게 와서 이야기했다. 저 사람이 소리 지르는 게 아니라면 조용하게 말하라고 할 수 없다고. 어차피 비행기는 시끄럽다고. 혹시 못 참겠으면 귀마개를 줄 수 있다고.


기내 규정을 잘 모르는 상황이어서 일단 알겠다고 하고 그냥 자고 넘어갔다. 원래 그런 건가. 내가 소리 지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 계속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으면 안 말리려나? 싶었다. 둘 다 민폐 아닐까. 흠. 생각했는데 그 사람 위치를 생각하면 엔진 근처라 큰 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음악 들으며 사람과 이야기하면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곤 하니깐. 다 같이 자는 시간엔 그래도 자더라. 아침 먹을 땐 밥 먹고 힘내서 다시 이야기(...)


찾아본 결과 매너는 아니지만 승무원 쪽에서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해를 다시 봤다. 짧은 여행이라 돌아와서도 여행 다녀왔단 느낌보다 짧고 굵은 꿈을 꿨단 느낌이 들었다. 일출의 시간이 짧듯이. 해가 떠서 눈부시기 전 그 찰나에 다녀온 것처럼.


짧아서일까 원래 여행은 그런 걸까. 아쉬운 게 느껴졌다. 비 때문에 못 갔던 곳들, 우리끼리 다투느라 못 간 곳들이 생각났다. 난 결국 멀라이언을 못 봤다. 멀라이언이 크게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비 와서 하나는 다퉈서 못 갔다. 이번 여행에 멀라이언은 허락받지 못한 느낌. 다음에 온다면 혼자 와서 멀라이언과 시간을 보내야겠단 생각을 한다. 다시 싱가포르 가면 못 가본 노점 식당에 가서 먹어봐야지.


처음 갈 땐 어디 갈지 모르고, 가고 싶은 곳이 없었는데 처음 가보니 다시 갈 때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이 아쉬움이 어쩌면 다시 여행을 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다시 가고 싶고, 더 가고 싶고 또 가고 싶게 만드는 그 아쉬움. 못 가봤지만 가보고 싶어 설레는 곳, 가봤지만 그리운 곳이 부르는 그 느낌이 여행을 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경험에 따라 아쉬움이 다르게 느껴져 다시는 여행을 가지 않아야겠다고 작용할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나는 아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금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음엔 꼭 한 번 혼자 가보고 싶다고. 그리고  마음이 맞는 이와, 사랑하는 이와 같이 가보고 싶다고. 아쉬움 덕에 결심하게 된 것들이 있어 아쉬움이 고마웠다.



본 포스트는 싱가포르관광청으로부터 일부 경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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