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라는 적>을 읽고,
죽은 시간은 사람이
수동적으로 무엇인가를 기다리기만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고
살아있는 시간은
무엇이든 배우고 행동하며 1분 1초라도 활용하려고 노력하면서 보내는 시간이다. <에고라는 적> 중
공부하러 다닐 때나 일을 하러 다닐 때 나는 대부분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가는 데만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반 정도 거리였다. 왕복 1시간-3시간 거리를 지하철에서 보냈다. 이 시간이 아까웠다. 나는 독서를 하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날려야 하는 매일 1-3시간이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이 시간이 누적되면서 읽은 책도 같이 누적되었다. 내게 독서란 쉬운 일처럼 느껴졌다. 출퇴근할 때만 읽으면 되는 거였으니깐. 피곤해서 글이 눈에 안 들어올 때면 가끔 SNS를 보곤 했지만 지하철에서만큼은 내 손엔 항상 책이 있었다.
자연히 책 읽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직장을 옮기면서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게 됐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모호한 구간이라 걷거나 자전거 등을 타야 했다. 평소 일을 다닐 때보다 1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나는 처음 출근하기 전에 아침에 카페에 가서 책 읽을 생각에 자못 설레기도 했다. 사람들 가득한 곳에 낑겨서 서서 읽는 게 아니라 매일 알차고 편하게 책 읽을 수 있다니.
출근한 지 4개월이 됐을 때 알았다. 내 독서량은 거의 바닥에 가까워졌다. 아침에 카페 가서 책 읽는다는 계획은 호기로웠지만 객기롭게도 첫날부터 지금까지 이뤄진 적이 없다. 그저 가끔 타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습관처럼 꺼내서 읽은 게 전부였다.
나는 1시간의 여유를 굳이 피곤하다며 더 자기 위해 침대에서 썼다. 오래 자서 잠도 안 오면 그냥 핸드폰을 보며 뒹굴거렸다. 그렇게 수개월을 보냈다. 책을 요새 조금 안 읽는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 요새 뭐 하는 걸까? 싶었다.
나의 시간을 살펴보았다. 일어나서 씻고 준비해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씻고 저녁 먹고 잔다의 반복이었다. 내가 '내 시간'이라 할 부분이 잘 안 보였다. 그냥 집과 회사, 잠과 근무의 연속이었다. 일하기 위해 자고, 회사에 가기 위해 집에 오는 느낌이었다. 삶이 어딘가 삐끗한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 시간들이 죽어간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내 시간을 찬찬히 보았다. 분명 남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조금은 있었다. 내가 아침에 침대에서 뒹굴거린 시간, 의식 없이 컴퓨터 하며 보낸 시간, 밤에 침대에서 노닥거린 시간. 이 시간들을 활용하기로 했다. 내 죽은 시간들을 부활시키기로 했다.
수면 패턴부터 다시 잡았다. 11시에 자서 7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짧게 운동과 명상을 하고 독서를 시작했다. 여유롭던 서재가 꽉 차기 시작했고, 자주 오는 책 배송에 지갑이 자주 비게 됐다. 하루가, 삶이 살아났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취소된 약속 등 죽은 시간을 우리가 오래전부터 꼭 해야 할 일을 할 기회로 활용할 때, 이 죽은 시간은 부활한다.
다른 시간을 살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잠자는 시간, 일하는 시간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느 시간을 조절할 수 있을지 살펴보니 통근 시간이 있었다.
원래는 전동 킥보드를 타고 통근했다. 걸어서 가면 30분이지만 타고 가면 10분이었다. 매일 40분의 시간을 아껴 내 시간으로 써야겠단 생각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모종의 사고를 당해서 걸어 다니게 됐다. 왕복 1시간을 걸어야 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했다. 내가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생각했다.
책을 읽고 싶었다. 그다음은 운동하고 싶었다. 운동은 항상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매번 뒤로 밀리는 일이었다. 앞으로 당겨서 할 일이 있다면 운동이었다. 어떻게 운동할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매일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1시간 걷기가 힘들진 않지만 가벼운 운동은 아니었다. 꼼짝없이 시간 날리겠구나 에서 매일 빠짐없이 1시간씩 걷기 운동을 할 수 있구나로 생각이 바뀌었다(근력 운동은 아침에 짬을 내서 하고 있다).
요새는 통근 시간에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탈 때는 책 읽어서, 킥보드 탈 때는 위험해서 정보성 강연을 듣지 않았다. 음악만 듣고 있다가 이때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걸 들으면 좋겠다 싶어 들으며 걷는데 제법 재미와 유익이 쏠쏠하다.
이 글을 쓴 가장 큰 동인은 '글을 쓰고 싶어서'이다. 책을 읽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다 좋지만 내겐 글 쓰는 것만 하지 않다. 내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건 글쓰기라고 생각하곤 한다. 글도 잘 안 쓰다 보니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 하지, 손이 안 갔다. 오늘은 어떻게든 글을 써봐야겠다 해서 소재를 찾을 겸 책을 폈다. 마침 이 주제가 나왔다.
글감을 위해 책을 폈는데 책이 건네준 주제 덕에 내 시간을 살릴 수 있었다. 저자의 단호한 이야기는 느슨해지면서 타성에 젖어가는 내 마음을 바짝 말려서 쫙 펴준다. 내게 글을 쓴다는 건 시간을 살아 있게 쓰는 것인 동시에 살아 있는 시간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 순간이 당신의 인생 전체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의 인생의 어떤 한순간임은 분명하다.
당신은 이 순간을 어떻게 사용하겠는가?
"이것은 나에게 좋은 기회야. 나는 내가 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 기회를 활용할 거야. 이것을 죽은 시간으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내 인생이 소중하다면 내 인생의 합을 만드는 지금 이 한 '순간'도 소중하다. 내가 바라는 인생이 있다면 그 인생으로 갈 수 있는 한 '걸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아는 게 먼저겠다. 그다음 '어떻게'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비슷한 고민 중이다. 일은 하고 있지만 정말 이 일이 나의 방향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고민하며 답이 떠오를 때까지 시간을 '죽일 수'는 없었다. 기다리기만 하지 말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이 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했다. 방향은 아직 없지만 일단 계속 움직이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어디로 가든 알게 되면 갈 수 있는, 어떻게든 갈 수 있는 힘을 길러두자고. 독서와 운동을 통해 마음과 몸을 준비해두자고.
글을 읽고 난 다음 당신은 '이 순간'을 어떻게 사용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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