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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Aug 06. 2017

내 글은 읽을 만할까?

읽을 만한 글은 어떤 글일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오늘 옷을 사러 갔다. 직원분에게 어떤 옷을 찾아 달라고 말했다. 직원분이 옷을 찾는 중에 한 할아버지가 오셨다. 영화 영수증을 가지고 오시더니 '다른 직원 어디 갔나~?'이라고 하셨다. 직원분은 그게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영화를 보고 왔는데 옷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옷을 찾으시냐고 하니 영화 보기 전에 수선을 맡겼는데 그 옷을 찾고 싶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수선한 옷의 영수증이 아니라 영화 영수증을 들고 이야기를 하셨다. 영수증을 보여 주면 당신이 영화를 보기 전에 맡겼고, 보고 나서 찾으러 왔다는 걸 당연히 직원이 이해할 거로 생각하신 거다.


처음부터 수선 맡긴 옷을 찾고 싶다고 하셨으면 바로 이야기가 됐을 텐데. 내 요청을 해결하는 데까지 잠시 돌아왔지만 그 과정을 보며 작은 걸 배웠다. 작은 부탁부터 큰 요청까지 상대가 나의 필요를 바르게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역지사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인간관계, 사회생활의 기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말해야 상대가 제대로 알 수 있는지까지. 


나를 알아주길 바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알아줄 수 있게 내가 해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가 어떻게 해야 알아볼 수 있을지 상대의 관점을 생각해야 한다. 


일상에서 역지사지를 생각해보니 '글쓰기로 역지사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에는 글을 오랜만에 쓰지만, 요새 매일 페이스북에 짧게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게 해 준 단초를 준 문장이 있다.


상품을 주고받는 장소를 '賣場' (매장)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판매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표현인데도 본인들은 그런 사실을 모릅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곳은 '賣場'(매장)이 아니라 '買場'(매장)이 되어야 하겠지요. 즉,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라 '매입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이라면, 책을 대출해 주는 쪽의 논리가 아니라 도서관을 이용하는 다케오 시민인 아이들의 기분, 어머니의 마음, 어르신들의 생각을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적 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10p


'매장(賣場)'이라는 단어가 판매자의 관점이란 생각을 처음 했다. 매장이란 건 내가 열었고, 나를 위한 곳이란 의미로 느껴진다. 매장을 연 것은 나지만, 나만 있으면 매장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와야 한다. 소비자가 올 공간이 되어야 하니 다르게 생각하면 주체는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매장(買場)'이 되어야 한다는 마스다 씨의 말은 역지사지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나는 먼저 글을 왜 쓰는가를 생각했다. 내가 쓰고 싶어서 쓴다. 쓰고 혼자만 보는 게 아니라 브런치, 페이스북 등에 쓰는 이유는 책을 읽다가 발견한 좋은 문장과 그 덕에 얻은 생각들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누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 독자의 좋은 반응을 받고 싶어서 쓴다.


'내가 왜 글을 쓰지?'에서 '구독자분들은 내 글을 왜 읽지?'


그러다 저 문장을 읽고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페이스북에 매일 올리면서 작은 실험을 해보고 있다. 단순히 책에서 꺼낸 문장만 올려놓으면 그 문장이 왜 좋은지, 내가 왜 그 문장을 적었는지 알기 어려우니 사람들의 반응이 적다. 반응이 적으면 의도가 덜 충족되니 읽을 만한 요소를 궁리한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을까?'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니 짧게라도 이야기가 들어가면 좋을 듯해서 내 이야기를 조금 곁들여 써보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브런치에 정리해서 다시 쓰면서 생각을 해본다. 방법적인 고민(HOW)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고민(WHY)이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글을 쓰는 시점의 구독자는 4,675명이다. 이 분들은 나를 왜 구독하셨을까? 구독한 후 브런치 알람이 떠서 읽은 내 글이 그들의 목적에 닿을까?글을 쓰면 그중 2% 정도 읽는다는 느낌이다. 특별히 브런치나 카카오 채널, 다음 메인화면에 뜨지 않는 한 글을 쓴 당일엔 100명 조금 넘게 읽는 것 같다. 


100명 정도 읽는 글에 항상 읽어주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고, 복수의 겹치지 않는 분들이 그때만 읽은 수도 있다. 내겐 숫자로만 보이니, 구별이 안 된다. 


그래서 글의 공유와 조회 수보다 내가 좀 더 바라는 건 댓글이다. 댓글을 보며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실감을 느끼고, 나누는 의견 혹은 생각들이 참 재미있고, 힘이 된다.


그런데 내 글의 조회 수와 공유가 꽤 많을 때도 댓글은 많지 않았다. 나보다 구독자가 더 적은 분 중에 댓글이 많이 달린 걸 볼 때가 종종 있다. 브런치에서 연계될 수 있는 다른 플랫폼에서 뜬 게 아니라 브런치 내부에서 댓글이 많이 달렸다면, 전체적으로 적은 구독자여도 그 사람의 열성적인 구독자 수가 나보다 많은 걸지도 모른다. 


그런 분들의 글과 내 글의 차이는 뭘까 고민해본다. 인스타그램처럼 서로 가서 댓글 달아주는 문화가 브런치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분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여러 군데에서 댓글을 열심히 다셨다. 인스타그램에서 다는 그냥 '선팔해요, 소통해요~' 식이 아닌 글을 읽고 소회를 적는. 그러면서 본인도 글을 열심히 쓰셨다. 댓글을 받은 작가들은 다시 그분 글에 가서 댓글을 같이 다는 모습을 봤다.


나는 브런치에서 글을 잘 못 읽는다. 내가 주로, 제대로 읽는 글은 책이다. 다른 게 아니라 매체 특성상 종이 위 글자여야 집중을 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내게 브런치는 읽는 곳보다 쓰는 곳이다(아마 이렇게 작가의 마음이어서 독자의 마음을 모르는 걸지도). 여기저기 읽고 소통하는 이가 아니니, 여기에 소통할 수 있게 글쓰기에 힘을 더 줘야 한다.


읽을 만한 글을 쓴다는 건?


매장을 연 건 주인이지만 고객이 있어야 의미가 있듯, 글은 내가 썼지만 읽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그러니 나는 글을 쓰는 사람에서,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사람이어야 한다. 


매장의 비유로 이어간다면, 물건은 언제든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물건이 매력적이지 않거나 실용적이지 않다면 사지 않을 것이다. 글은 언제든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글이 매력적이지 않거나 실용적이지 않다면 읽지 않을 것이다. 


서비스 응대, 매장의 조명, 배경 음악, 동선 배치 등은 주인 취향이 아니라 철저히 소비자 편의에 맞춰야 한다. 마음대로 해도 사람들이 올 만한 것을 파는 게 아니라면. 글 또한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써야 한다. 내가 마음대로 써도 사람들이 읽고 싶을 만한 글을 쓰는 게 아니라면.



글을 쓰기 전에는 
항상 내 앞에 마주 앉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라고 상상하라. 
그리고 그 사람이 지루해서 자리를 뜨지 않도록 하라.
- 제임스 패터슨 


일단 글을 계속 써보자. 쓰면서 반응을 보자. 매장은 장사가 안되면 망하지만, 브런치는 안 읽어도 계속 쓸 수 있다. 내가 쓰고자 하는 한. 읽을 만한 글이 어떤 글인지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겠다. 다만 큰 목적은 정할 수 있게 됐다. 


지루하지 않아서 자리에 있을 만한 글, 흡입력이 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글 거기에 누군가 맞장구치고, 뭐라도 한마디 할 마음이 드는 글. 그런 글을 쓸 때까지 꾸준히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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