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려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들통 나 버릴까봐. 나는 사실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나는 사실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게. 나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게. 그러니까 진짜로 '작가'가 아니라는 게 들통 나 버릴까봐. 그 누구도 아닌 내 재신에게 들통 나 버릴까봐 나는. 내내 두려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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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하얀 새 한글창에 까만 글자들을 하나씩 채워나가면서 나는 알게 됐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즐겁다는 것을 결국 나에겐 재능 따윈 없었고, 나는 작가도 뭣도 아닌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음이 들통 난다 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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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알아버렸으니까. 이제 정말 알아버려서, 더 이상 외면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게 돼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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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무엇이든 쓰고 싶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무것도 쓰고 있지 않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즐겁지 않은 나라는 것을, 이제 정말 알아버렸으니까.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강세형 저 27-29쪽
정식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직면하기 쉬운 고민. 전공을 하고, 등단을 한 사람 입장에선 브런치라는 블로그에 글을 쓴다고 '작가'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보기 불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정식 등단을 통한 작가가 아닌 다른 경로로 출판해 작가란 호칭을 쓰는 게 보기 안 좋을 지도 모른다. 이미 구축된 프로의 세계가 갖고 있는 시선이란 게 있으니.
우리는 무엇이든 쓰고 싶은 사람들이다
모쪼록 이 브런치라는 공간은 글쓰기 좋아하고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특화된 곳이다. 이곳에선 그다지 글을 잘 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다들 봐주고 봐준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하얀 바탕에 나의 생각을 적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무엇이든 쓰고 싶었던 사람이다. 쓰면 된다.
글쓰기 실력이 늘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비법은 다름 아닌 양이다. 한 교수가 도자기 만드는 두 팀으로 실험을 했다. 한 팀은 양에 집중해서 작품을 만들고 다른 한 팀은 질에 집중해서 작품을 만들라고. 결과는 양에 집중한 팀이 질도 높았다. 질에만 집중한 팀은 질에 신경 쓰다 만들지도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양에 집중한 팀은 되는대로 만들고 이것저것 붙이고 하면서 오히려 질까지 좋아졌다. <칼의 노래> 김훈 작가도 매일 반드시 5매의 글을 쓴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이든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여기는 무엇이든 쓰라고 있는 곳
우리도 여기서 쓰고픈 말, 쓰려고 했던 말, 쓰려고 안 했지만 쓰게 된 말 등 어떻게든 많이 쓰다 보면 괜찮아질 것이다. 정식 작가가 안 되면 어떤가. 전문가들이 인정 안 하면 어떤가. 우린 무엇이든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여기는 무엇이든 쓰라고 있는 곳이니 재밌게 쓰고 즐기면 된다.
2013년 8월 21일 읽고 정리한 책 문장에 발췌
2015년 10월 13일 편집 후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