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왜 그 순간이 기억나는지 모르겠는데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고, 중요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별로 중요치 않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은 '순간'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에서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어요. 순간도 마찬가지지요. 어떤 순간에 내가 의미를 부여해주어야 그 순간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면 나의 삶은 의미 있는 순간의 합이 되는 것이고, 내가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나의 삶은 의미 없는 순간의 합이 되는 것이에요
<여덟 단어> 중
내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면 나의 삶은 의미 있는 순간의 합이 된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걸출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할까? 그렇게 해야만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기준에 통과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정말 그런가? 주위에 사람들을 잘 보면 결과와 상관없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분들이 많다.
폐지를 주으고 받은 조금의 돈을 꼬박 모아 기부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결과를 빼고 할머니의 삶을 보면 하루하루 폐지를 주으러 돌아다니시는 게 하루의 구성이다. 그 순간순간을 그냥 보면 얼마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고생을 고생대로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 마음속에 확실한 목적이 있고 그 과정에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의미 있게 된 순간, 모든 게 달라진다. 그 한 순간순간이 할머니의 목적 가운데 모두 의미 있는 순간의 합이 되는 것이다. 기부를 하게 된 결과는 과정의 끄트머리, 한 단면일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합이다. 과정의 합 = 결과 이면서 같은 말이 아니다. 내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순간순간을 보내는 것이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의미 있는 삶 자체가 하나의 결과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의미 있게 느끼는 무언가를 해낼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해도 관계없다. 내가 내 순간순간에 의미를 부여했다면.
살아갈 삶, 끌려갈 삶이 아닌 끌리는 삶
오늘 하루도 24시간, 1440분, 86400초의 합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간들은 그냥 두어도 흘러간다. 어차피 보내게 될 그 순간을 만끽하면 지나갈 삶 전체를 누리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각자가 부여할 수 있는 의미는 다를 것이다. 어떤 의미를 부여해도 괜찮다. 어차피 두 갈래 길이 있다. 의미 부여한 순간을 사는 사람과 순간에 의미 부여하지 않는 사람.
어떤 면에서 본다면 삶은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부분이 있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이지만 살아갈 모든 과정에 주체성을 뺀다면 정말로 의미 없는 삶이 돼버리지 않을까? 살아도 생기 없는 삶이 되지 않을까? 살게 됐으니 내가 살아갈 모든 순간에 살아갈 의미를 생각하며 누리며 살면 어떨까. 내게 의미 있는 삶이 될 때 누군가도 의미 있다고 여길 수 있고, 자신의 삶에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다면 그것 참 끌리는 삶 아닌가. 남이 부여한 의미대로 또는 의미 없이 끌려가는 삶 말고 의미 없이 사는 이에게 의미를 일깨워주고 내 순간의 의미를 부여하는 끌리는 삶을 어떤가.
2013년 7월 11일 단상 중 <여덟 단어> 내용 갈무리 발췌
2015년 10월 1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