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꼬박 1년을 채울 때 여름휴가 5일을 받았다. 해외 혹은 국내 여행들을 갔다. 나는 오래전부터 휴가를 받으면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빌 게이츠가 1년에 2번 한다는 생각 주간(Think Week)을 나도 보내고 싶었다. 내가 바란 나만의 생각 주간은 '딥 워크'를 위한 공간에서 지내기였다. 1주일 동안 모든 연락을 끊고 오로지 읽고 생각하고 쓰기만 하는 시간. 이 시간을 통해 빌 게이츠가 굵직한 결정을 할 수 있는 통찰을 얻었듯 나도 무언갈 얻고 싶었다(빌 게이츠가 5일 동안 버는 돈을 얻으면 어떨까?..)
처음엔 에어비앤비를 알아봤다. 5일 동안 묵을 집을 찾았다. 몇몇 후보가 있었다. 이태원에 하나, 연남동에 하나, 익선동에 하나. 40만 원 가까운 돈을 서울에서 묵을 집에 쓰는 게 쉽지 않았다. 에어비앤비 처음 찾을 땐 아시아 여행하는 셈 치려고 했다. 결제할 때가 다가오니깐 숫자가 더 눈에 들어왔다. 숙비도 들고 식비도 든다. 카페도 하루에 2번 정도 갈 것 같았다. 그냥 집에서 책을 읽기로 했다.
집은 편하지만 단절된 곳은 아니었다. 내가 집에 있다는 걸 가족이 알고 있다. 집밥을 먹는 이상 밥만 먹고 할 일을 안 할 수도 없었다. 회사와도 단절되지 못했다. 나 없어도 잘 돌아가는 회사이지만, 잠깐 없으면 불편한 정도는 되었다. 불편한 일이 생길 때마다 연락이 왔다. 카톡 프로필에 급하면 전화를 하라고 적어놨지만, 혹시나 몰라 회사 카톡방에 들어가 상태를 보기도 했다.
듣고 싶던 강의도 하나 들었다. 휴가여야만 만날 모임도 2번을 가졌다.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기에 책에 집중하기로 한 시간보다 더 소중했다고 본다.
조금씩 흘린 시간을 모으니 한 움큼이 됐다. 원래는 사진으로 찍어둔 저 10권을 읽고 싶었다. 한 주를 보냈을 땐 6권을 읽었다. 양으로 따지면 맨 왼쪽 책, 레이 달리오의 <원칙>이 평범한 단행본 3권 분량이라 9권 정도 읽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완독 목록 :
1. 딥 워크 - 생각 주간 주목적이 집중력 회복을 위해 집중력 교과서인 '딥 워크'를 읽었다.
2. 의욕의 기술 - 쉼을 갖기 전에 의욕이 많이 떨어져서 읽었다. 중간중간 명언 인용은 좋았지만 전반적으론 만족스럽지 않았다.
3. 유튜브로 돈 벌기 -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회사를 다니거나 무엇을 하든 결국은 유튜브 혹은 동영상 콘텐츠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짧게 말하면 유튜브가 답이란 생각.
4. 원칙 - 남이 세워 준 원칙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세운 원칙이 있는지 돌아봤다. 덕분에 내가 지킬 내 삶의 원칙을 세웠다. 번역 논란이 있는 책이다. 핵심 내용만 이해하는 용으로는 괜찮아 보였다. 영어 원서를 술술 읽고 싶다.
5. 마케팅 불변의 법칙 - 많은 원칙들이 쭉 있었다. 몇몇 원칙은 신선했고 몇몇 원칙은 진부했고 몇몇 원칙은 의아했다.'불변'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는, 마케팅 책 중 고전이 될지는 모르겠다.
6. 움직여라 당신의 뇌가 젊어진다 - 이 책을 이번 생각 주간 중 얻은 예상 밖 수확이었다. 갑자기 알게 되어서 계획에도 없이 사서 읽었다. 책 내용 자체는 '달려라, 달려라, 달려으라라!!!!!'다. 달리기는 내가 갖고 싶은 능력들을 제공해주었다. 집중력, 창의력, 스트레스 관리. 몇 년 전부터 달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일을 안 할 땐 제법 열심히 달리기도 했다. 달리지 못한 나에게 큰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부터 지금까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최소 10분씩 꾸준히 달리고 있다.
아직 읽는 중인 책 :
1. 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검색에 담긴 재밌는 썰들이 많다. 사람들이 은밀한 욕망을 검색한 내용이 초반에 많아서인지, 지하철에서 읽을 때면 옆 사람이 신경 쓰인다.
2. 컨테이져스 : 이 책이 '마케팅 불변의 법칙'보다 더 낫게 느껴졌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익힐 수 있으면 좋으련만. 벌써 가물가물하다.
3. 앵무새 죽이기 : 소녀의 사고 회로와 감정 변화를 어떻게 저렇게 잘 알까 싶다. 초중반이라 아직 명작의 아우라를 다 느끼진 못 하고 있다.
(나머진 펴보지도 못 했다...)
첫 생각 주간을 보내며 아쉬웠던 점
오두막 같은 곳에서 책만 읽고 싶었지만, 현실은 어려웠다. 연락두절이어도 괜찮은 일을 해야 제대로 보낼 수 있겠다. 일도 그렇고 보내는 장소도 잘 골라야 한다. 다음엔 정말 사람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는 곳으로 가야겠다. 에어비앤비 아니면 기도원에 가려 한다. 절은 음식이 안 맞을 것 같아서(...).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 집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면 좋을 듯하다.
첫 생각 주간을 보내며 좋았던 점
요새 정말 원했던 집중력 회복을 했다. 생각이 또렷해짐을 느꼈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내 삶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았다. 쓰고 싶던 글도 다시 쓸 수 있다. 일(Work)과 일상(Life)에서 균형을 맞출 방법을 찾기도 했다.
휴가와 비슷하게 쉴 수 있는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명절에 딱히 할 일이 없다면 한 번 생각 주간을 보내면 어떨까? 빌 게이츠가 번 돈은 벌 수 없겠지만(ㅠ), 빌 게이츠가 얻었던 통찰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번 추석 때 다시 한번 3일 정도 가벼운 생각 주간을 보내려 한다. 이번 생각 주간엔 또 어떤 좋은 점을 얻을 수 있을지, 무엇을 수확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