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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Mar 22. 2019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정말 행복할까?

<열정의 배신>을 읽고

글로 지식을 더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관점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다. 칼 뉴포트의 글은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지점을 건드린다. 그의 사고 흐름과 나의 것이 비슷해서일까 그의 글을 읽으면서 드는 질문은 차례대로 답이 나오고, 다 읽었을 쯤에는 그가 제시한 대로 살아야 한다고 설득되었다. <딥 워크>가 그랬고, 최근에 읽게 된 <열정의 배신>도 그렇다. 


<열정의 배신>은 <딥 워크>보다 4년 전에 나왔지만, 최근에 번역, 발행되었다. 저자가 말한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본인이 직업을 구하면서 했던 고민이 시작점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무엇이 열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였다고. 이때 시대는 '열정'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도 정작 열정을 따르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 이후 '열정을 따르라',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청년들에게 시대정신이 되었다. 저자는 이를 '열정론 Passion Hypothesis'라고 부른다. 저자에 따르면 열정론은 '직업에서 행복을 얻으려면, 우선 당신의 열정이 어디로 향하는지 파악한 후 그 열정에 맞는 직업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열정론의 아이러니 하나는 그것을 전파한 스티브 잡스 본인이 열정론대로 살지 않았던 데에 있다. 잡스는 애플 컴퓨터를 설립하기 몇 달 전만 해도 영적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었다. IT는 당장의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 워즈니악과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일이 운 좋게 잘 풀려서 본격적인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가 그의 말대로 사랑하는 일을 쫓았다면 명상 지도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열정론의 열혈 추종자였다. 사회로 나가야 했을 때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진로 수업, 서적이 제시하는 대로 몇 번의 성격 검사, 인터뷰로 금방 정해서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문제였다. 내게 딱 맞는, 생각만 해도 떨리고, 일요일 밤에도 기대되는 직장은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저자는 열정론이 가진 위험 요소를 제시하며, 열정론을 따라서는 자기만의 일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고 싶다면 3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로 실력, 둘째는 자율성, 셋째는 사명 의식. 나는 그중에서 실력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저리게 와 닿았다.


열정 마인드셋보단 '장인 마인드셋'

쉽게 말해 실력을 쌓으라고. 실력을 쌓고, 사람들이 볼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라고. 그러니 먼저 누구도 무시 못 할 실력을 쌓으라고. 물론 이 말의 맥락도 있고,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알려지는 데에는 실력만큼 운도 중요하고, 자기 홍보를 하지 않으면 결코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가려면 실력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실력이 있으면 열정이 생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서) 실력을 갖추고 운을 만나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극히 드문, 소위 덕업 일치된 몇 안 되는 경우일 뿐이다. 


실력 없이 열정을 따르면 생기는 문제가 있다. 내 인생을 온전히 걸어갈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열정의 환상에 홀려 전력 질주를 하게 된다. 달리다가 다치거나, 달리지 못해 낙심하게 된다. 지금은 달려갈 때가 아니라 꾸준히 걸어갈 때인데. 하체 훈련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은 뭐지?'라는 질문엔 답하기 어렵지만,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는 보다 명확한 답이 있다. 모호한 답을 추구하다가 찾아낸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오랫동안 찾지 못한다. 찾았을 땐 이미 장인이 되어 그 일을 좋아하게 된 후일 가능성이 높다. 


실력을 쌓는 데에는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 한다. 피드백도 받고, 그 시간에 그 일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1만 시간의 재발견>을 통해 대가 연구가의 대가인 안데르슨 에릭슨이 말했듯 피드백이 함께 하는 '의식적인 노력' 외에는 압도적인 실력을 갖출 수 없다. 


일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지금 하는 일이 내게 맞을지, 내게 맞는 일이 있진 않을지. 이 책을 접하고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됐다.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고민은 알 수 없는 확률을 찾아 헤매는 게 아닌, 내 실력을 확실하게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그 외에는 할 시간도, 여력도 주면 안 된다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을 시작했다. 다행히 날이 풀려서 걸어 다니면서 전자책을 볼 수 있게 됐다. 걸어 다니며 책 읽는 건 할 생각을 못 했는데, 시간을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사람도, 차도 없는 길이라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하루 50쪽은 꼬박 읽을 수 있게 됐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자기 전에도 읽고 있다. 취준생 때만큼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책을 많이 읽는 건 어렵지 않은 단계다. 책 한 챕터에서 콘텐츠를 뽑는 것도 어렵지 않다. 내겐 한 권을 요약해서 완결된 글을 쓰는 게 어렵다. 나무 하나를 제대로 묘사하려면 어쩌면 숲을 볼 줄 알아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겐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서평을 쓰는 게 필요하다 싶었다. 


일단 시도하라. 꾸준히 연마하라. 쉬되 멈추지 말라.

실력이 생기면 지금보다 자율성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율성이 높을수록 내 일에 대한 만족도는 오를 것이다. 실력 없이 자율성을 요구하면 회사와 나에게 독이 된다. 축구 실력이 초보인 사람을 프리미어 리그에 넣는 것과 같다. 


사명감은 실력의 끝에 있는 사람이 발견할 수 있다. 실력 없는 사명감은 망상 혹은 좌절로 빠지기 쉽다. 최고가 될 때 비로소 자기가 해야 할, 자기가 해내야 할 지점이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때엔 사람들이 나의 사명에 동조해주고 함께 해줄 수 있게 된다. 위에서 말한 초보가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한다고 외치면 아무도 듣지 않지만, 호날두가 말하면 동료들이 모여들 것이다. 


결국은 실력을 쌓으면, 어떻게든 된다. 실력이 있다고 다 성공하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진 않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니깐. 하지만 이 복잡한 삶에서 실력이라도 없으면, 잘 살아낼 확률을 잡아낼 다른 방법이 있을까?


내가 원하는 분야의 책을 읽고, 모임에 나가 대화하고, 계속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삶을 1년, 2년 살아낸다면 어떤 삶을 만날 수 있을까?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원하는 만큼 노력해야 한다. 프리미어 리그든, 고등 래퍼든, 쇼미 더 머니든 경쟁이 있는 어떤 것에서 우승하고 싶다면, 우승할 만큼 노력해야 한다. 나는 아직 우승의 가능성을 논할 만큼 노력해 본 적이 없다. 첫 단계로 노력의 '양'을 먼저 채우자. 프로 축구 선수가 되려는데 10km도 쉬지 않고 못 뛴다면 세심한 드리블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니깐.


필요한 실력을 갖추고, 동네 축구에서부터 입증한다면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나를 못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 실력 때문이다(이 글의 축구 이야기는 모두 비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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