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채민씨 Apr 07. 2019

누구나 가지고 있는 광기의 씨앗

<나의 작은 시인에게>

*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로 보았습니다. 


제목, 일정만 보고 신청했다. 제목과 얼핏 보게 된 시놉시스 등으로 추측컨대 아이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주는 선생님 이야기로 생각했다. 장르로 치면 성장 드라마? 그런데 정작 '일상 스릴러물'이었다. 지루할 법한 이야기를 지루할 틈 없게, 잔잔히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전한다. 따로 다시 보진 않을 것 같지만, 적당히 재밌게 봤다.


(바로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인공인 교사 리사는 유치원 선생님, 아내, 엄마이자 시 짓기를 배우는 학생이다. 그녀는 시 짓기를 배우러 배 타고 맨해튼까지 간다. 용기 내어 시를 발표했지만 진부하단 평을 듣곤 낙담한다. 남편에게 들려주지만, 그냥 가족이니깐 해주는 칭찬을 들을 뿐. 


수업에 가서 발표하기 전에는 일도 열심히 하고, 웃음도 있었다. 혹평을 들은 뒤 에너지가 사라졌다. 시와 연결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 그러던 중 유치원생 '지미'가 읊은 시에 충격을 받고, 받아 적는다. 지미의 시로 수업에서 발표하자 극찬을 받는다. 이후 리사는 활력을 찾고, 일상엔 독이 스며든다.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리사'

나는 감독이 묘사한 그녀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단 생각을 했다. 인정 욕구, 재능에 대한 열등감, 내가 옳다는 우월감 등이 얽힌 모습. 시를 잘 짓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우울함, 인정받고 싶은 마음, 지미에 대한 경탄, 지미에 대한 질투, 지미의 시를 훔쳐서라도 칭찬받으려는 것, 얻어낸 시 선생의 마음, 자녀들이 문학적 소양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 


이런 것들은 삶에서 잠재적 마약과 같다. 한 번 맛을 보면 계속 얻으려 하게 된다. 중독은 또 다른 중독을 불러일으킨다. 여러 중독이 얽히면 충족될 수 없어 결국 광기로 나타난다. 


열등감이 있는 상태에서 칭찬을 받으면, 해소되지 않고 더 칭찬을 받으려 하게 된다. 좋은 결과일 때 칭찬받는 아이들은 문제를 풀 때, 과정에 최선을 다해 칭찬받는 아이들보다 몰래 해답지를 볼 가능성이 높다.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통제가 어긋날수록 더 통제력에 집착하게 된다. 리사는 아들이 해병대 가는 것을 이해하지 않았고, 필름 사진이 아닌 인스타그램으로 사진 재능을 썩히는 딸을 보며 답답해했다. 통제력을 가지려 하면 할수록 자녀는 그만큼 튕겨 나갔다. 


우리의 욕망은 단순하지 않다

지미에 대한 마음은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갖는 복잡다단한 욕망을 보여준다. 지미와 리사는 굉장히 독특하게 묘사된다. 잠재력을 키워주려는 스승과 제자 같기도 하고, 열등감의 대체제로 보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뒤틀린 사랑의 관계로 보이기도 한다.


SNS를 하는 것만 해도 여러 동기가 작동한다. 재밌는 소식을 보기 위해서, 친구들의 근황을 알기 위해서, 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공감을 받기 위해서, 자랑하기 위해서, 저격하기 위해서, 우월하고 싶어서, 때로는 누군가의 근황 속 열등감, 비교 의식을 느끼기 위해서(스스로 아픈 곳을 건드려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우리는 분명 SNS를 하면서 일부러 안 좋은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상에서는 리사처럼 광기가 진짜 발현될 일은 많지 않다. 다만 천천히 삶을 잠식할 뿐. 중독을 피하려면 내가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지, 내가 움직이는 동기가 무엇인지 정직하게 살펴야 한다. 리사가 시를 배우려는 동기, 지미의 시에 감동한 동기, 자녀들에게 그렇게 말한 동기. 한 가지 동기로 이뤄진 게 없기에 더 정직해야 한다. 명분으로 합리화하지 않도록.


욕망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해체된 동기에서 옳은 것은 두고, 아닌 것은 버려야 한다. 시 짓기를 잘하고 싶으면 많이 쓰고, 피드백을 겸허히 받으면 된다. 자녀들을 사랑하고 싶으면 아이들과 관계를 맺고, 마음을 들어봐야 한다. 지미의 재능을 키워주고 싶으면 자신이 아니어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면 된다.


무엇보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다른 사람의 마음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걸 인지하지 못한 채 중독됐다가, 갑자기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광기가 시작된다. 리사는 지미의 재능을 자신이 피워낼 거라 확신했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되자 납치를 감행하는 것처럼.


영화 속 리사의 광기는 '평범한' 가족 식사(일부러 생략된 걸로 보이는) 후 평범한 일상처럼 리사와 지미의 소풍으로 보이는 납치 그리고 실소가 나오는 지미의 신고로 마무리된다. 동시의 지미의 시 또한 들을 이가 없게 된 것처럼 묘사된다. 


평범과 광기, 둘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영화의 주된 주제는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평범한 일상을 통해 재능을 잃거나 광기를 통해 얻기,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전자 <위플래쉬>는 후자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영화를 본 다음 날 <위플래쉬>를 다시 보게 됐다. 어쩌면 두 감독 모두, 재능의 획득은 광기와 일상의 등가교환으로만 이뤄진다고 말한 걸지도 모른다. 




DAUM 메인 화면 선정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정말 행복할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