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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Jun 06. 2019

<파리의 딜릴리> 딜릴리가 준 정말 멋진 것들

사랑스럽고 유쾌하며, 풍성하고 깊은 딜릴리와 그때 그 사람들 이야기.

'브런치 무비패스' 통해 보게 된 '영화'입니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될 부분이 섞여 있습니다. 


파리는 한 번 2박 3일 동안 머물며 가보았다. 짧고 빠르게 있어야 했기에, 가보고 싶었던 곳들 대부분은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파리에 관한 이야기, 사진, 영화들을 볼 기회가 생기면 유심히 보는 편이다. 가본 곳이 나오면 반가움을 느끼고, 못 가본 곳이 나오면 다시 가면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파리의 딜릴리는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 관해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겠지만, 파리에 관한 이야기가 꽤 매력 있는 그림체의 만화로 구성됐다고 하니깐. 


'가끔 인생은 정말 멋진 걸 주기도 한다' 딜릴리의 이야기가 내게 준 3가지.



1. 매력적인 '벨 에포크' 시대

GV를 했던 한기일 작가님에 따르면 정작 파리 사람들은 이런 묘사들을 낯간지러워한다고 한다. 그 시대에 활동했던,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이들의 끝없는 나열을. 딜릴리처럼 내가 적은 이름도 꽤 많다. 퀴리, 수잔 발라동, 피카소, 파스퇴르, 드뷔시, 엠마 칼베, 쥘 베른, 베르송, 모네, 르누아르, 드가, 사라 베르나르, 프루스트, 로댕, 까미유 끌로델, 에펠 등등. 짧게라도 그들의 작품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파리의 예술적 전성기로 묘사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딜릴리. 그녀가 마주하는 사건을 통해 파리의 다양한 곳과 수많은 전설적 예술가를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예술에 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이 영화를 재밌게 즐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2. 만화 영화의 매력

만화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로 잘 표현해서, 파리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만화 특유의 상상력을 잘 펼쳤다고 생각한다. 실사 영화 같게 묘사한 부분은 실사 같아서, 만화적 특성을 강조한 부분은 정말 만화 같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에펠탑에 도착하며 엠마 칼베가 노래를 부르는 씬에서는 기대보다 멋진 장면과 음악 덕에 전율이 일었다.



딜릴리를 보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밝고, 인사성이 좋고, 주관이 뚜렷하면서 호기심이 많다. 예술에 대한 조예도 있어 보이고, 프랑스어 발음과 줄넘기를 잘한다. 주도적이며 자존심이 강하다. 딜릴리가 작은 키로 이곳저곳 분주하게 달려가는 모습과 그 키를 활용하는 모습은 긴박한 상황에 상관없이 다들 '귀여워'를 나지막이 읊조렸다.


극장에서 만화영화를 볼 때면 대개 영화보다 만화에 힘이 들어가서 '만화'로만 인식하곤 했다. <파리의 딜릴리>는 세심한 완급 조절로 마지막 외에는 '만화'에 힘을 강하게 들어간 부분이 생각보다 느껴지지 않은 점이 흥미로웠다. 


3. 시대정신에 대한 생각거리

누가 봐도 악당처럼 보이는 사람이 여아 유괴를 할 것처럼 묘사되고 실제로 그래서 낯설었다. 너무 평이한 구조로 흘러가서 중반까지는 남자 주인공인 오렐이 흑막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감독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풀어나갔다. 영화 서사를 단단히 만들기보다 주제 전달에 힘을 주었다. 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 침략과 인간 동물원, 약자와 혐오 등을 전반에 걸쳐 보여준다. 마스터 맨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아주 두드러지게 묘사하기도 하고, 인간 동물원 같은 부분은 가볍게 지나가지만 묵직한 뒷맛을 남겨 주기도 한다. 


남성우월주의적 사상을 가진 이들의 만행은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면서도 일견 있을 법한 진행이었다. 여자들이 교육받는 것을 위기로 느껴서, 여아를 납치해 아예 새로 교육을 시키겠다는 발상은 다양한 일들을 오버랩이 되었다. 


영화 속 사람들은 여성에 대한 눈에 보이는 폭력에는 분개해한다. 한편 지금 우리가 보기엔 이상하지만, 그들에게 너무 익숙한 모습도 있다. 딜릴리조차 '인간 동물원'일에 대해 크게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던 것처럼. 계속해서 시대의 가치관은 달라진다. 30년 뒤, 지금 이 시대를 보면 이해 안 될, 용납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뭘 지 익숙해진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날 하수구에 가둘 수 없어', '두 발로 걸어, 다시는 네 발로 걷지 마'

딜릴리는 하고 싶은 게 많다. 자신에게 안 된다고 하는 말은 듣지 않는다.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갇혀 지내고, 억눌려 지낼 바에는 죽기를 택한다(실제로 죽을 생각은 안 한 것 같지만). 그만큼 주도적 삶이 아닌 삶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 여긴 것. 지금의 젊은 세대와 이어져 보인다. 아무리 취업난이라 해도 나를 억누르는 곳에 있을 바에야 가난을 택하는 것처럼(죽을 생각으로 그만두는 게 아닌 것처럼).



자유에 대한 갈망, 주체적인 삶에 대한 욕구는 갈수록 뚜렷해진단 생각이 든다. 그렇지 못하게 강요받았던 것일수록 더욱. <어벤저스 : 엔드게임>에서 의도적으로 여성 히어로들을 한 번에 집합시켰던 모습으로, 누구든 '히어로'가 될 수 있음을 선언했다. 그전까지는 그렇게 될 수 없었기에.


아쉬운 점을 꼽자면 감독은 서사와 설정에 딱히 관심 없어 보여 스토리 자체에선 김이 새는 점. 갈등이 다 해소된 후 어떻게 됐는지는 엔딩 크레디트에 짧게 나올 뿐 자세히 언급되지 않는다. 마스터 맨 조직의 기술이 왜 발달했는지도 잘 나오지 않고, 엄청난 기술에 비해 조직원은 왜 이리 허술한지. 경찰청장이 마스터 맨과 한 편이란 것만으로 퉁쳐지는 그들의 활개침까지. 평면적인 캐릭터 묘사에도 아쉬운 부분이 몇 있다. 다만 이건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보려 하니 말한 것일 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딜릴리가 준 사랑스러운 행복감을 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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