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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Jun 07. 2019

<하나레이 베이>를 보고

사랑도 미움도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때 오는 것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평온하고 담담하며 때론 유쾌하게 풀어냈다. 다 보고 나면 바닷가로 가 책을 읽고 싶어 진다. 많이 덥기 전에 5일 정도 바닷가로 가서 책만 읽을 계획을 세우게 됐다. 


* 브런치 무비패스 통해 보게 된 영화입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파도 타던 타카시는 죽는다. 바로 하와이로 온 엄마 사치. 화장하기로 하고, 손도장은 거부한다. 담당자(정확한 직책 명을 못 보고 지나쳐서..)는 굉장히 사려 깊어 보였다. 나중에 남편임을 알게 된 경찰(경찰인지도 확실하지는 않지만..)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특이한 부분은 경찰 분이 '이 섬을 원망하지 말아 달라'라고 했던 것. 왜 그런 말을 그때 그 장소에서 했을까? 다 보고 나서 생각한 건 '이 섬'은 곧 자연, 그리고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으로 돌아간, 죽은 사실을 원망하지 말아 달라고. 그것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는 의미라 생각한다. 



타카시의 유품에 있던 예전에 죽은 남편의 카세트테이프와 헤드폰. 타카시는 아빠의 유품에서 그걸 찾아내 들었다. 사치는 그게 못마땅해서 헤드폰을 빼버렸다. 타카시는 모르지만, 사치에겐 아픈 기억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헤드폰은 '소통'을 표현한다. 상대 앞에서 헤드폰을 낀 모습은 단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 상대가 정말 듣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표현할 수 있다. 


사치는 시종일관 우울한 느낌의 곡을 연주한다. 군인 출신 백인은 돈을 줄 테니 신나는 곡 좀 연주해달라고 할 정도. 영화 내내 거의 웃지도 않는다. 그런데 타카시가 듣는 음악은 신나는, 펑키한 곡이다. 타카시의 감정과 감성, 타카시가 듣고 싶은 것은 사치의 것과 전혀 달랐다. 사치가 타카시가 듣던, 어쩌면 남편도 들었던 그 음악을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에야 받아들여야 했던 걸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치는 처음 하와이로 올 때 흰 옷을 입고 와서, 그다음 날엔 검은 옷으로 바꿔 입는다. 사치의 옷 색깔에 의미를 조금은 담은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다음에 하와이에 올 땐 빨간색 등 생생한 색이 들어간 옷을 입는다. 그러다 외발 서퍼를 찾아 헤맬 때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옷을 입고 뛰어다닌다. 삶과 죽음의 혼재, 누군가에게 보였지만 자기는 볼 수 없는, 죽은 타카시를 찾을 때.



영화가 묘사하는 타카시와 사치의 관계는 그렇게 살갑지 않다. 사치는 타카시를 챙겨주지만, 타카시는 딱히 사치를 좋아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건 사치의 기억이기 때문에 그렇게만 보일 지도 모른다. 사치는 그렇게 타카시를 지켜보지만 다가가진 않는다. 그래서 타카시가 들어갔던 바다 가까이 가진 않지만, 볼 수 있는 곳에 앉아 바다를 보기보다 책을 읽는다. 


바다와 보드, 음악은 타카시의 선호를 말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때 주로 하는 첫 단계는 상대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해이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이가 어떤 팀의 팬이라면, 같이 가서 응원하고 승리에 기뻐하고 패배에 슬퍼하는 것이다. 사치는 타카시가 좋아하는 것을 말리지 않지만, 공감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사치는 하와이에서 처음 만났던 담당관 집에 찾아가 말한다. 이 섬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이 섬은 자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까지 받아들여야 하냐고. 엄밀히 말하면 받아들인 게 아니다. 그저 바라만 봤을 뿐.


죽음은 간직할 때에만 받아들일 수 있다


타카시의 죽음,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건 2가지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손도장'을 받아들일지와 '사진'을 가지고 다닐지. 그러니까 죽음은 애도, '간직'해서 받아들일 때만 진정 받아들일 수 있단 것이다. 사치가 죽음을 받아들인 건 '정리'를 통해서다.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상복을 갈아입지도 않고 바로 타카시의 짐을 박스에 넣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타카시가 집에 있을 때마다 내던 소리가 들렸기 때문. 들려선 안 될,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듣고 싶지만 듣고 싶지 않은 그 소리를 없애기 위해.


사치에게 살갑게 접근했던 고등학생의 이름은 영화 내내 나오지 않는다. 묻지도 않았고. 글을 쓰기 위해 찾아봤다. 고등학생1 로만 적을 순 없으니. '타카하시'였다. 


타카하시는 사치가 타카시를 받아들이게 해 준 안내자였다. 사치와 타카시 사이가 좋았다면 이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틱틱대는 사치의 말에 타카하시는 능글능글하게 받아친다. 사치를 욕한 소리에 화가 나 상대가 안 될 걸 알면서 싸우기도 하고, 타카시는 먹지 않은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다. 


아들 타카시에 대해 직접적으로 묻기도 한다. 왜 사진이 없냐고. 타카하시에게 남편의 죽음도, 힘들었던 과거도 이야기하는 사치지만 아들 이야기는 제대로 못 했던 사치는 할 말을 잃는다. 받아들이지 않은 걸 알게 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무엇보다 사치를 처음으로 활짝 웃게 한 건 타카하시였다. 그전까지 사치는 계속 찡그린 채로 지낸다. 아들에게 주었던 샌드위치를 먹고 난 이후, 아들을 조금씩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바닷가에서 책만 보던 사치는 이제 보드를 타는 타카하시와 친구를 본다. 마치 바닷가에 모래 장난하는 아이를 사랑스럽고, 걱정스럽게 보는 것처럼.



타카하시는 사치에게 보드를 타게 한다. 사치가 거부하지만 강경하게 데려간다. 영화 속에서 사치를 설득한 사람이 없었는데 타카하시는 그걸 해낸다. 사치는 보드에 대해 뭐가 재밌을지 이해 못 했지만, 타보면서 왜인지 모르지만 그 재미를 흠뻑 느낀다.


그다음 외발 서퍼 이야기를 꺼낸다. 타카하시에게 정말 보였던 걸지, 아니면 숙소 사장이 말해준 걸 모른 척 말한 걸까 했는데 정말 보였던 것 같다. 타카하시를 통해 타카시는 사치가 자신을 받아들이게, 자신을 찾게 이끈다.


사치는 그 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외발 서퍼를 찾아 나선다. 그 와중에 타카시의 버릇없던, 해주는 것도 없지 않냐고 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계속 찾는다. 사치가 떠올린 타카시에 대한 기억 중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걸을수록 생각나는 귀여웠던 모습들을 떠올리게 된다. 가려진 걸지, 숨겨진 걸지 알 수 없는. 


숙소로 간다. 숙소 사장의 친구였던 이는 이라크 가서 죽었지만 사진이 있어 계속 기억할 수 있다. 이제야 흔적의 중요성을 알게 된 사치는 10년 전 타카시의 사진을 찾아낸다. 그제야 타카시는 이제 엄마 뒤에게 까지 나타난다. 


밉고, 사랑하고, 보고 싶다


손도장을 가져가면서 사치는 아들을 싫어하며 사랑했다고, 복잡하고 강렬한 감정을 토로한다. 숙소로 돌아와 처음으로 감정 조절을 하지 못 한다. 죽었을 때도 담담히 조절했던 사치가. 그러고 나서 손도장을 마주한다. 처음으로 맞댄 손, 마주한 아들. 있는 그대로 밉고, 사랑하고, 네가 보고 싶다고 하는 사치.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버리지 않은 짐을 풀어본다. 거기에서 카세트테이프를 켜서 듣는다. 타카시가 듣던 음악을 들으며 타카시의 취향, 타카시의 마음에 다가간다. 일본에서 우연히 타카하시를 만난다. 이때는 아들 사진을 보여준다. 이제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자 그제야 하와이에서 둘은 만난다.


무언가 사랑하는 이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건 말 그대로 모든 걸 받아들인다는 것이라고 감독은 보여준다. 사랑도, 미움도, 죽음도 받아들일 때에야. 상대의 취향을 이해하려 하고, 상대의 기억을 지우려 하지 않을 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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