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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Dec 06. 2020

예민한 사람들의 놀라운 초능력

프롤로그. 예민해서 행복해요 

얼마 전, 요리를 하다 뜨거운 김에 손가락을 데었다. 주방 일에 익숙하지 않아 쉽게 데곤 했던 터라 여느 때처럼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살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더니 살짝 스치기만 해도 쓰릴 듯이 아파왔다. 소독약을 사러 약국에 갔더니 2도 화상이란다. 화상, 그것도 2도라는 말에(1도도 아니고) 마음이 먼저 놀랐다. 그날 이후 내 마음은 온통 오른쪽 검지를 향해 있었다. 멸균 밴드가 붙여져 있는 가로 1cm, 세로 2cm의 작은 부분으로 온 신경이 집중됐다. 큰 상처가 아니라는 것을 머리는 알고 있다. 지극히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피부 재생 시스템에 의해 머지않아 괜찮아지리라는 것도. 하지만 마음은 낯선 자극을 견디지 못한 채 어느새 삐쭉삐쭉해져 버렸다.


그렇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예민한 부류에 속한다. 예민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심리학자도, 신경정신과 의사도 아니지만 내가 느낀 예민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낯선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나치게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 소심해서 할 말 못 하고, 별 것 아닌 상황에도 긴장하며 두려움을 느끼는 것. 문제의 원인을 못난 내 탓이라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것.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슴도치처럼 마음에 가시를 품고 사는 것. 그 가시에 자신이 찔리는 줄도 모른 채 웅크리고 앉아만 있는 것. 이불 밖이 무서운 게 아니라 자궁 밖이 무서워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 이렇게 적고 보니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마음은 다 끌어 모아놓은 것 같다만.

      

당신도 이런 마음을 느낄 때가 많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예민한 사람이다. 


예민함을 독특한 개성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라면 문제없겠지만, 나의 경우는 다르다. 예민함 때문에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소중한 꿈을 이루는 데 방해받고, 사랑하는 사람을 놓쳐도 봤다(뭐,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사랑하는 사람이야 놓치길 잘했다는 쪽이지만). 예민한 성격이 마음에 안 들어 바꿔보려 갖은 노력을 했지만 늘 제자리걸음... 그러다 어느 순간 세상 하나뿐인 나의 존재를 부정하며 영혼의 어두운 밤을 보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앞으로 써 내려갈 글들은 가시를 세우며 자신을 방어하기 급급하던 불안하고 뾰족한 마음이 조금씩 똥글똥글해지는 과정을 적은 사적인 기록이다. 미숙하게 ‘동글동글’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엣지 없이 ‘둥글둥글’해진 것도 아니다. 탱탱볼처럼 건강하고 탄력 있는 똥글똥글한 마음이다. 예민한 사람을 위한 전문가의 처방이 아닌 경험으로 검증한 민간요법이라고 할까.


예전의 나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뾰족해진 마음이 일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 전에 알아차리고 달래준다. 풍선에 바람을 넣듯 깊은 호흡으로 마음을 빵빵하게 만든다. 그러고 나면 세상엔 2도 화상의 상처보다 관심 가질 만할 더 빛나는 일들이 많다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최상의 당도로 최고의 빛을 내며 숙성돼 있는 식탁 위 바나나라든가, 한동안 방치했던 오래된 화분에서 피어난 작은 꽃잎 같은 것들 말이다. 2도 화상은 그저 피부 재생 시스템에 맡긴 채, 말랑말랑 달콤한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물며 막 세상에 나온 어린 꽃잎에 이름을 붙여보는 것도 제법 괜찮은 일이다.  


 “남들보다 민감한 우리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더 예민하게 불행한 감정을 느끼지만, 적절한 상황에서는 훨씬 더 큰 행복을 느낀다.” - <센서티브>, 일자 샌드     


똥글똥글해졌다고 생각한 마음에도 수시로 예민함은 찾아온다. 희망이 있다면 일자 샌드의 말처럼 예민한 우리는 작은 행복에도 더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을 그냥 능력이 아닌 ‘초능력’이라 부르고 싶다.


그렇다. 우리는 예민해서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예민해서 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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