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반민초'가 무슨 뜻인지 처음엔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민초라고 하면 '이름 없는 민초들'이라고 표현할 때 바로 그 민초밖에 없었으니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반민초'를 민초를 핍박하고 억압하는 부패한 기득권 정도의 의미일 거라 자의적으로 해석해버렸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무지의 소치다.
세상은 크게 보면 두 가지 분류로 나뉘곤 하는데, 낮과 밤,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 같은 식으로 말이다. 우주적 차원에서 좀 더 세속적 차원으로 내려오더라도 마찬가지다. 짜장과 짬뽕, 마블과 DC,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흡사 이데올로기의 팽팽한 대립을 연상케 하는 민초와 반민초까지...
민초파와 반민초파들의 변론을 듣기 전까지 나는 민트초코에 있어서만큼은 어린이 수준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민트초코를 먹어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내가 아는 민트라고는 페퍼민트 티, 민트 성분이 첨가된 샴푸와 치약, 아로마 오일이 전부였다. 지나가는 말로 '민초파냐, 반민초파냐?' 묻는 지인들에게 어물쩡 대답을 회피하곤 했다. 평소 무슨무슨 '파'에 속할 마음이 전혀 없을뿐더러 변덕이 심한 마음을 스스로도 믿지 못하여 언제나 두 가지 선택지에서 나만의 확고한 신념을 내세우지 못했던 나는 그 질문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사실 먹어보지 못했으니 민초에 대한 호불호를 판단할 근거가 없었던 것뿐이지만.
페퍼민트 티를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커피를 많이 마신 저녁이나 소화가 잘 안 되는 날에 가끔 마시곤 했던 터라 민트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어느 여름, 미용실에서 민트 성분이 들어간 샴푸로 머리를 감겨주는데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낀 다음부터는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 여름이면 민트 샴푸를 샀다. 민트 성분이 들어간 치약으로 이를 닦을 때는 무슨 이유인지 치아가 더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깨나 종아리 근육이 뭉친 날에 페퍼민트 오일을 발라 마사지해주면 시원하게 풀리곤 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내가 민트초코도 좋아할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불현듯 민트초코의 맛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걸어서 15~20분 정도 걸리는 배스킨라빈스 매장을 굳이 찾아가서 파인트를 주문했다. 민트초코와 아몬드 봉봉, 베리베리 스트로베리가 담긴 포장백을 들고 집으로 오는 내내 민트초코 맛이 궁금하여 발걸음이 빨라졌다. 집에 오자마자 숟가락을 들고 민트초코를 살짝 떠서 먹어보았다.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맛이 제법 괜찮았다. 흔히들 얘기하는 치약 맛도 나지 않았고 처음 약간의 쓴 맛과 함께 시원한 단맛이 깊이 올라왔다. 진한 아이스크림을 페퍼민트 티와 같이 먹는 느낌이었다. 분명 고칼로리일 텐데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몸이 가벼워지는 착각이 들었다. 살도 별로 찌지 않을 것 같았다. 음... 역시나, 나는 민초파였군. 평소 좋아했던 아몬드 봉봉과 베리베리 스트로베리는 그대로 냉동실로 들어갔다. 나중에 생각나면 먹어야지...
이렇게 민초에 대한 나의 취향 테스트가 일단락되는가 싶었는데, 문제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 넣고 정확히 5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발생했다.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지난번 건강검진 결과, 빈혈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최근 들어 이렇게 어지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술에 취했을 때처럼 순간적으로 세상이 흔들렸다. 집안에 전봇대는 없으니 전봇대가 내게 다가온 것은 아니고, 찰나였지만 한쪽 벽이 내 쪽으로 훅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술은 먹지 않았고 그 시각 대한민국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뉴스도 듣지 못했으니 아마도 빈혈 때문이리라. 그게 아니면 나이 탓이겠지. 민트초코 때문은 절대로 아닐 것이다.
애써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에 다녀와 생수를 한 컵 마셨다. 어지럼증은 조금 진정된 듯했는데 갑자기 속이 메슥거려왔다. 크림 파스타를 잔뜩 먹고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신 것처럼 니글니글했다. 멀미를 할 때처럼 울렁거렸다. 낮에 잠깐 집 앞에서 친구를 만나 파스타를 먹긴 했다. 크림 파스타는 아니고 매콤한 오일 파스타였다. 아마 점심으로 먹은 오일 파스타가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이겠지. 민트초코 때문일 리는 절대 없다. 니글니글한 속을 달래기 위해 냉장고에서 찬밥을 꺼내 물에 말아 김치 한쪽을 올려 먹어주었다. 그러자 이내 뱃속은 진정되었고, TV를 보던 나는 소파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잠이 들기엔 아직 이른 저녁이었는데, 팔다리에 힘이 쑥 빠지면서 몸이 나른해졌다. 낮에 친구를 만나 오랜만에 긴 산책을 했기 때문일 거다. 민트초코 때문임은 절대로 아닌 것이 틀림없다.
다음 날, 냉동실에 남아 있는 아몬드 봉봉과 베리베리 스트로베리를 꺼내 먹는데 어쩐지 민트초코를 먹을 때와는 사뭇 다른 즐거움이었다. 100퍼센트의 맛있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민트초코를 먹을 때는 100퍼센트의 맛있음은 아니었구나... 적게는 51퍼센트, 많게는 99퍼센트의 맛있음이었다고 할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민초파에 속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민트초코는 맛있는 거야'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며 혀가 아닌 '생각으로' 맛있음을 느끼려 했던 것 같다. 내 기준, 민초파가 더 트렌디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민초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뭔가 취향마저도 쿨한 사람으로 보이리라 착각했나 보다. 때로는 취향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하니까.
무언가에 대한 호불호를 따질 때, '호'는 굳이 생각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어떤 느낌일 테다. 그냥 내 몸이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100퍼센트의 좋은 감각. 마땅히 분명해야 할 그 감각은 생각으로 따지고 판단하려 들면서 채도가 흐려진다. 그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점점 흐리멍덩하고 색깔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게 아닐까. 물론 살다 보면 '호'가 '불호'가 되고, '불호'가 '호'가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지만 말이다.
민초를 먹고 벌어진 내 육체의 이상현상을 민초 때문이라고 단정하기엔 논리적으로 보편성이 떨어진다. 검색창에 '민트초코 부작용'이라고 쳐 보았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마침 그 날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우연찮게도 민트초코를 먹고 난 그 시점에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안다. 나는 이제 민트초코를 다시는 먹지 않을 것이다. 민트초코에 대한 호불호를 수치로 명확히 따질 수는 없겠지만 호와 불호의 분류에서 내 선택은 불호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상에 고하는데, 나는 반민초파다.
민트초코 말고도 세상에 맛있는 것은 많다. 세상 모든 것에서 나는, 가능하면 100퍼센트의 분명한 호를 택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감각을 활짝 열어놓아야겠다. 밀도와 농도와 채도가 진한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