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렁증이 요가동작에 미치는 영향

by 조혜영

어떤 가수가 연습실에서 혼자 노래할 때는 디바가 따로 없는데, 무대 위에만 서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노래를 망친다면? 이 가수는 노래를 잘하는 가수일까, 못 하는 가수일까? 같은 질문을 운동선수에게도 던져볼 수 있겠다. 피겨 스케이터가 있다. 연습할 때는 트리플 액셀을 식은 죽 먹기로 하는데, 정작 경기장에서 매번 실패한다면? 이 선수는 피겨 스케이팅을 잘하는 선수일까, 못하는 선수일까?


요가를 할 때 나도 그렇다. 특히나 한 발로 서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동작들에서 유독 그런 증상(?)을 보인다. 집에서 연습할 때는 비교적 잘 되는데, 요가원에서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동작을 할 때는 유난히 더 휘청대는 거다. 한 발로 균형을 잡고 선 채 동작을 유지하는 데는 내 기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데 누가 볼 때면 더 집중이 안 되고 뱃속이 울렁거린다. 아마도 타인의 시선을 꽤나 의식하는 모양이다.


수능시험을 볼 때도 그랬다. 창가 옆 맨 앞자리에 앉아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감독관이 계속 내 앞에 서 있었다. 물론 앞에 서서 내가 정답을 잘 고르나 못 고르나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감독관이 신경 쓰여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게다가 왕파리 한 마리가 창문 위에서 날아가지도 않고 윙윙 대는 바람에 시험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망했다는 말이다). 지금 같으면 앞에 서 있는 감독관에게 "죄송하지만 저만치 좀 가주시겠어요? 집중이 잘 안돼서요."라고 정중히 말했을 법도 한데, 그때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내 방송작가로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급하게 대본을 쓰다가 피디나 메인작가 언니가 보고 있으면 머리가 딱 굳어져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연예인을 섭외하는 일이 소심한 내겐 참 고역이었는데, 능수능란한 매니저들을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예인 매니저와 통화하며 안 되는 화술로 겨우겨우 출연을 설득시키고 있는 와중에, 역시나 피디나 메인작가 언니가 통화 내용을 듣고 있다는 눈치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버벅대며 말이 꼬여버리기 일쑤였다.


막내작가 주제에 "저는 혼자 있을 때 능력이 더 발휘된답니다. 제발, 혼자 있게 해 주세요...!"라고 외칠 수도 없고, 사회생활이라는 게 사실 함께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지 않은가. 지금이야 연차도 되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따로 또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요령과 여유가 생겼지만 사회생활 초기에는 여러모로 마음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거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생기는 울렁증이 요가를 하면서까지 발목을 잡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요가수트라> 제1장 2절의 경구는 요가를 하는 사람들에겐 나침반과 같은 가르침인데, 내용은 이렇다.


'요가는 마음의 상태를 통제하는 것이다.'


요가란 필시 아사나를 통해 요동치는 마음 작용을 컨트롤하는 훈련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가 수행자는 이 가르침에 따라 움직임 속에서도 늘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마음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한데, 나는 내면보다는 밖으로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있었으니 겉으로는 요가를 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던 거였다.


내면이 아닌 밖으로 마음이 흘러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못할까 봐 마음 졸였다. 요가원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다녔으니 회원들 중에서 내가 제일 오래 다닌 축에 속하는데 아직도 특정 동작을 못한다는 것이 창피했다. 나보다 늦게 요가를 시작한 분들이 내가 못하는 동작을 척척 해낼 때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이번에는 꼭 잘 해내야지, 하는 마음을 굳게 가질수록 잘 못할 것 같은 불안함도 더 커졌다.


특히 한 발로 균형을 잡는 동작에서 계속 휘청댄다는 건 나름대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요가매트를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할 때, 세상이라는 매트 위에서 나는 늘 울렁거리며 휘청대고 있었던 거다. 한 발로도 우뚝 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갖지 못했다. '원래 난 못해, 이번에도 또 못할 거야'라고 말하며 내가 한 발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의심했다. 흔들릴 때마다 손으로 벽을 짚듯이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려고만 했다.


한 손으로 엄지발가락을 잡고 한쪽 다리를 허공을 향해 들어 올리려면 반대쪽 다리가 굳건히 바닥을 누르고 있어야 한다. 그 가운데 코어에 힘을 주어 몸의 중심으로 에너지를 모아 오면서 가슴은 활짝 펴고 시선은 당당히 앞을 바라봐야 한다. 유지하는 동안 흔들릴 것 같은 불안함은 반복적인 깊은 호흡으로 잡아낸다.


반대로,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땅을 딛고 있는 다리는 후들거리고, 코어 힘은커녕 에너지는 밖으로 다 빠져나간 채 어깨와 등이 굽어 가슴은 움츠려지고, 시선도 흔들리며 바닥을 보게 된다.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불안해지는 건 필연적 결과다. 오랜 시간 나는 세상이라는 매트 위에서 이런 식으로 살아왔구나...


고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다시 묻는다면, 혼자 있을 때만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진짜 노래를 잘하는 게 아니다. 연습할 때만 트리플 액셀을 잘하는 선수는 피겨 스케이트를 진짜 잘 타는 선수는 아니다. 어차피 인생은 실전이다. 수많은 관중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깊은 중심에 몰입할 때에만 진짜 힘 있는 목소리, 진짜 힘 있는 행위가 나오지 않을까. 칭찬과 비난에 일희일비하며 휘청대는 나에게 꼭 필요한 훈련이다.


언제쯤이면 한 발로 서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기억하련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지 않기! '원래 난 못해, 이번에도 또 못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길을 내지 않기!


그 길은 출입금지 안내판으로 단단히 막고, 이제 다른 길을 내보련다. 그 길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길목에서 시작될 것이다. 상상 속에서 완성된 동작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몸의 각 부분에 자신감 있는 에너지를 불어넣어야겠다. 굳건한 다리, 단단한 코어, 활짝 편 가슴과 이완된 어깨, 그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또렷한 시선... 그렇게 오늘도 한 발로 우뚝 서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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