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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색깔을 들여다보다.

by 조혜영


이런저런 일로 바쁜 하루를 보내다 저녁 늦게 노트북을 펼치고 앉았다. 이제 글을 쓰려한다.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 내 마음을 잠시 들여다본다.

모든 행위가 마찬가지겠지만, 마음의 색깔이 어떠냐에 따라 글쓰기의 과정과 결과는 사뭇 달라진다. 그날의 기분이라든가, 감정 상태, 의도의 방향, 태도... 등이 글의 문체와 정서를 좌우한다. 어제의 글은 우울하게 가라앉았다가, 오늘의 글은 모든 것을 포용할 듯 열려있다. 어떤 날의 글에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가, 또 다른 날의 글에선 세상에서 가장 거만한 사람이 되어있다.


글은 그 사람을 오롯이 드러낸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이 두렵다. 아이러니하지만 같은 이유로 글을 쓰는 일이 즐겁기도 하다. 꼭꼭 숨겨놓았던, 부족하고 미성숙한 내 모습이 나도 모르게 흘러넘쳐 글을 통해 드러날까 봐 두렵다. 하지만 한편으론 글이라는 세계 속에서 그 꼭꼭 숨겨놓았던 나를 풀어헤칠 수 있는 자유를 느낀다.


작년 가을이었나, 손홍규 작가가 쓴 신문 칼럼을 읽다가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 있었다.


작가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 증오, 슬픔, 기쁨,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작가에게서 그가 무얼 확신하는가를 느끼는 대신, 그가 무얼 두려워하는지, 무엇에 아파하는 지를 느끼게 된다.


위의 문장들을 노트에 몇 번이나 옮겨 적었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머리로 익힌 건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 뼈저리게 몸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습득이 되지 않았다. 손끝으로 기억해두기 위해 깜지를 채우듯 옮겨 적었었지만, 그 사이 나는 또 잊어버리고 있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나는 작은 확신에도 쉽게 들뜬다. 스스로 부족한 게 많다고 느끼는 욕심 많은 나는 작은 성취나 기쁨도 크게 포장해 떠벌리고 싶어 진다. 두려움이나 아픔 따위는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거나 이미 극복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이렇게 쓰인 글은 진정한 자유로부터 나를 점점 멀어지게 할 것이다.

칼럼의 글을 또 한 번 옮겨 적으며 글을 쓰려는 의도와 태도를 다시 들여다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의 색깔이 궁금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렇게 하루하루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알 수 있을까?


그런데 말이야,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그 ‘꼭꼭 숨겨놓았다는 나’는 어떤 모습인 거지? 그런데 왜 그렇게 꼭꼭 숨겨놓았던 거야? 어쩐지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어쨌거나, 지금의 글보다 조금은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미숙함 속에 갇히기보다는 세상과 맞닿는 곳으로 걸어 나가고 싶다.

조금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세상에 조금 더 쓸모 있는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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