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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안에 요정을 탄생시키는 마법

by 조혜영


견갑골 주변 등 근육에 통증이 있어 정형외과에 갔더니 나이 지긋하신 의사 선생님이 대뜸 목 때문이란다. 목에는 통증이 없었는데, 목 때문이라니. 얼떨결에 X레이를 찍고 일자목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X레이 사진 속에서 내 목은 C자형의 유연한 커브가 아니라 뻣뻣한 일자 모양으로 머리를 떠받치고 있었다.

낯설게 다가온 것은 일자형이라는 구조적 형태가 아니었다. 나를 이루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낯설음이랄까. 정녕 내 살갗 안에 저런 뼈가 들어있다는 말인가. 물론 목뼈뿐만은 아닐 것이다. 오만가지의 뼈와 힘줄, 내장, 혈액, 세포 등이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오늘따라 새삼스럽게 다가온 것은 왜일까.


요즘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다시 읽었다.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까?’라는 챕터에서 하루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많은 작업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나는 그 캐릭터를 만들 때 뇌 내 캐비닛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정보의 단편을 꺼내다가 그것을 조합한다, 라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자동적인 작용에 나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오토매틱 난쟁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중략) 내가 그런 얘기를 하면 다들 웃겠지만, 뭐 아무튼 ‘캐릭터 만들기’ 작업에서는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무의식 속의 ‘오토매틱 난쟁이’들이 아직까지는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여전히 아득바득 일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하루키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뇌 안에는 정보들을 모아놓은 캐비닛이 있고 무의식 속의 난쟁이들이 그 캐비닛 안에서 정보를 꺼내다가 이리저리 조합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코끼리.jpg


X레이 사진 속 목뼈를 보다가 문득 난쟁이를 떠올렸다. 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목뼈가 있어 머리와 척추를 연결해주고 있듯이, 혹시 내 안에도 난쟁이가 살고 있진 않을까. 꼭 난쟁이가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만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작고 귀여우며 지혜롭기까지 한 생명체 말이다. 무의식을 촬영하는 X레이 같은 것이 있다면 당연히 찍혔겠지만, 아직은 현대 과학이 그렇게까지 발전하지 못해 그 생명체를 볼 수 없는 것이라면. 가까운 미래에 무의식을 촬영하는 의료기가 개발되어 내 안의 난쟁이 비슷한 것을 보게 된다면, 그 낯섦은 목뼈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신이시여, 정녕 제 무의식 안에 저런 난쟁이 비슷한 것들이 살고 있었단 말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기가 쉽지 않다. 믿을 수 없으니 불안해진다. 자신이 없어진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내게는 많이 어렵다. 상상력이 부족한 탓일까. 내 무의식 안에도 이야기 공장이 있어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요정들이 살고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헉, 요정이 웬 말, 기생충이면 모를까...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다시금 희망을 가져본다.


무엇보다 거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매직(magic)’입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밖에 없더라도, 간단하고 평이한 말밖에 쓰지 않더라도, 만일 거기에 매직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것에서도 놀랍도록 세련된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밖에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한 나에겐 마법이 필요하다.

마법을 거는 방법부터 생각해봐야겠다. 주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기발하고 창의적이기는커녕 크고 무겁기만 한 머리를 중력의 힘을 거슬러 떠받치고 있는 목뼈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부디 너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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