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의 근원

by 조혜영

예민함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엄마 뱃속에서부터? 유아기 혹은 유년기? 아니면 기억할 수 없는 전생의 어느 때?


나를 임신했을 때 엄마는 입덧을 별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칼국수와 과일을 질리지도 않을 만큼 맛있게 드셨다고 했다. 첫 출산이었음에도 산통이 오기 시작한 후,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가 세상에 쑥 하고 태어났단다. 엄마 뱃속으로 들어와 태어나는 순간까지 엄마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엄마 뱃속의 따뜻함 때문이었으리라. 자궁이라는 아늑한 공간에서 안전과 평화를 느꼈나 보다. 이런 이유로 엄마 뱃속에서는 예민함을 크게 느끼진 않은 듯하다.


'예민(銳敏)'은 '날카로울 예(銳)'와 '민첩할 민(敏)' 두 한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어사전에서 '예민하다'는 단어를 찾아보면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로 각각 해석이 달라지는데, 크게 세 가지 의미로 나눠볼 수 있다.


예민하다 [예:민하다]
1.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2.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3. 어떤 문제의 성격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 있다. -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첫 번째 뜻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이고, 보통 예민하다는 단어가 부정적 성격 특성으로 사용할 때는 두 번째 의미로 해석된다(세 번째 의미는 '예민한 사안'이라는 용례로 뉴스 기사에서 자주 접하곤 한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로운 상태가 예민함이라면, '언제부터 예민함이 시작되었을까'라는 처음의 질문을 이렇게 바꿔 보는 게 좋겠다.


무엇 때문에 외부 자극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걸까?


한 때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던 드라마 <모래시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형집행을 앞둔 박태수(최민수 분)가 죽기 직전, 자신에게 사형을 구형한 검사이자 친구인 강우석(박상원 분)에게 하는 유명한 대사다.

“나 지금 떨고 있니?”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최민수 배우의 명연기가 더해져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이 대사가 나에게는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남들보다 특별히 뛰어난 것은 없지만 ‘떠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남다른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이다. 사형 집행대 앞에 선 사형수처럼 지금 당장 죽을 위기에 처한 것도 아닌데, 외부 자극에 민감한 마음은 낯선 상황을 위기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외부 자극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좀 더 근원적으로 말하면 죽음의 공포.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중뇌에 위치한 편도체 때문인데, 원시 시대 생존이 유일한 목표였던 인류에게 편도체는 외부 자극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살아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남들보다 좀 더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들의 편도체는 작은 것에서도 쉽게 위험을 감지하고 생존에 대한 공포를 더 많이 느껴 시시때때로 빨간 불을 켜대곤 한다. 이미 원시 시대가 지난 지 오래고, 원시 시대와 비교하면 아무 때나 빨간 불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이 안전해졌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육체적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정신적 자아(ego)의 소멸을 더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직장상사에게 험한 말을 듣고 자존감이 떨어질 때, 내 외모가 남들보다 못나 보일 때, 잘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데 세상에 나보다 우월한 존재들이 넘쳐날 때, 통장에 돈이 떨어져 갈 때, 사랑하는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내가 한없이 작아지다 못해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소멸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세상이라는 무대가 마치 자아의 사형 집행대처럼 느껴져 벌벌 떨고 있는 그때, 편도체가 심하게 요동치며 위기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너 자신을 지켜야 해, 몸을 움츠리고 안전한 곳으로 숨어, 죽지 않도록 너를 지키려면 가시가 필요해.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시...


그래서 예민한 사람들을 고슴도치에 비유하는가 보다. 나도 나름 예민한 축에 속하는 주제에 나보다 더 뾰족하게 가시를 휘두르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들에게도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는 그들도 나처럼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동지애를 느끼게 되지만.


날카롭고 뾰족한 것은 언제든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해치게 되어 있다. 고슴도치가 제 아무리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갖고 뾰족한 가시털로 무장하더라도 그 가시털에 누군가는 찔릴 수 있다. 그 대상은 타인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이다.


기억할 수만 있다면 엄마 뱃속에 있다가 세상에 얼굴을 막 내밀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처음 맡는 공기의 감촉과 들숨을 들이마실 때의 느낌,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들을 말이다. 세상과 만나는 첫 순간에 나는 기뻤을까, 슬펐을까? 설레었을까, 두려웠을까? 동굴 같은 어둠을 뚫고 힘겹게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이 마냥 기쁘고 설레지만은 않았겠지. 분만실의 불빛과 시끄러운 소음, 제 힘으로 숨을 내쉬고 들이마셔야 하는 고된 호흡... 처음 만나는 세상의 질감은 거칠고 쓰라렸을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면서도 가르쳐 준 적 없는 호흡을 해내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은 참 위대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어떻게든 호흡을 하고 있는 한 살아가게는 되어 있으니까. 편도체는 편도체의 일을 할 뿐이다. 편도체가 제 아무리 나를 예민하게 하더라도 편도체가 고장 난 삶은 생각하기도 싫다. 편도체의 일은 편도체에게 맡기고, 나는 내 할 일을 해야겠다.


어떤 떨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깊이 호흡할 것!


그래도 불안하면 배꼽을 만져보자. 한때 엄마와 연결되어 있던, 안전했던 흔적이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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