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특정 상황에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고소공포증이나 폐소공포증처럼 말이다.
'공포증'이라고까지 하긴 좀 그렇지만 나는 환 공포와 발표 공포가 있다. 환 공포증은 작은 원들이 모여있는 것에 혐오 혹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의 경우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다. 균일하게 맺혀있는 물방울이나 콩나물 재배기에 빽빽이 들어찬 동그란 콩나물 머리를 볼 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오는데, 이는 소름 끼치는 느낌이나 혐오에 더 가깝다.
그보다 조금 심각한 것은 발표 공포다. 나에겐 발표에 관한 트라우마가 있다(아니, 이제는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어느 수업의 조별 발표 시간. 강의실 앞으로 나가 첫마디 입을 뗀 순간, 아뿔싸, 준비했던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거다. 발표자료를 만들고 몇 번의 리허설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막상 무대에 올라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관중들의 얼굴을 보니 눈앞이 까매졌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터져 나온 말은 이랬다.
"어떡하지? 기억이 안 나..."
속으로 했어야 마땅할 말을 혼잣말처럼 내뱉고 만 나는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에게까지 그 말이 들렸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교수님과 학생들이 나를 보며 웃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후 발표를 어떻게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교수님과 학생들의 웃음이 비웃음이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신입생의 발표 실수가 순진하고 귀여워 보여 웃음이 나왔거나 혹은 실수 상황 자체가 웃음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그 날의 인상은 나의 뇌리에 크게 각인되어 이후 줄곧 ‘나는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하는 사람, 발표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만들어 달고 다녔다.
생각해보면 실수를 했던 그 발표 이전에 다른 수업에서 먼저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썩 잘하진 못했어도 실수 없이 내 몫을 잘 해냈었다. 하지만 좋은 기억은 나쁜 기억 앞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승자는 늘 나쁜 기억이었다. 그날 이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거나 발표를 한 적은 없었다. 다행히 그런 모험(?)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더 이상 발표 공포를 회피할 수 없었던 것은 우연한 계기로 대학 강의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선뜻 강의를 맡겠다고는 했지만 대학시절의 악몽이 떠올라 고사해야 하나 한동안 고민했었다. 당시 방송작가로서 정체기와 슬럼프를 겪고 있었던 나에겐 어떤 변화가 간절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감사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과거 트라우마를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지도 몰랐다.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지인이 참여하고 있는 스피치 모임에 나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짧은 스피치를 해보기도 하고, 출판사에서 하는 독서 모임에 나가 작정하고 말을 많이 해보기도 했다. 피하기보다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일부러 더 만들었다. EFT(Emotional Freedom Techniques)라고 하는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다. EFT는 특정 경혈을 두드려 부정적 감정을 정화하는 기법인데, 톡톡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막혀있던 감정이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강단에 처음으로 섰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작은 떨림과 긴장 속에서도 나를 믿고, 그리고 학생들을 믿고 편안히 강의를 할 수 있던 날을... 발표 공포를 겪던 내가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건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7년 넘게 강의를 해오면서도 불쑥불쑥 긴장이 올라올 때가 있다. 행여 말하는 도중 목소리가 떨리거나 표정이 얼어붙어 긴장한 걸 들키게 될까 봐 더 긴장하기도 했다. 부지불식 간에 대학시절 경험이 되살아나며 머릿속이 하얘지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수십 명의 얼굴들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강의실을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런 긴장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강의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생각을 나누고, 학생들의 작은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즐거웠다. 분명 그것은 나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남아있는 한가닥의 불안까지 극복해내고 싶었다.
<마음 챙김으로 불안과 수줍음 치유하기>라는 책에서 저자인 스티브 플라워즈는 ‘수줍음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을 비판하면서 남들도 자신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것이라고 상상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학생들의 얼굴이 공포로 다가왔던 것은 그들이 모두 나를 비난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 때문이었다.
'어휴, 지루해서 못 들어주겠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나도 이해가 안 되잖아.'
'얼굴은 왜 저렇게 생겼대? 못 봐주겠네.'
학생들의 마음속 목소리를 들은 듯 느껴졌다. 역시나 잘못된 상상은 예민한 마음을 부추기고 사태를 크게 만든다. 결국 그 비난의 목소리는 학생들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화장실에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강의실로 들어갔을 때, 학생들이 물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그제야 학생들의 얼굴이 한 명, 한 명씩 눈에 들어왔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20대 초반의 밝은 얼굴들이 거기 있었다. 그들은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점심 먹은 게 체했는지 배가 좀 아프네요."
내 말에 학생들이 웃었다. 몇몇 학생들은 이때다 싶어 휴강을 하자며 장난을 쳤다. 순식간에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눈 녹듯이 녹아내리고 강의실 공기가 훈훈해졌다. 떨림과 긴장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다시 편안해진 나는 남은 수업을 무사히, 재미있게 잘 마쳤다.
그 날 이후,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 내 안에는 큰 나와 작은 나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작은 내가 마음의 자리를 전부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겠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작은 나'를 품에 안고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더 큰 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두려움 혹은 사랑 가운데, 우리는 언제고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말을 빌리면 '떨림은 곧 진동'이다. '우주 만물은 모두 진동하고 있다'는 물리학자의 냉철한 이성이 묘하게 위안이 된다. 우주 모든 것이 진동하고 있으니, 고로 떨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긴장의 떨림이 삶의 경이로움을 향한 설렘의 떨림으로 바뀔 수 있길 희망한다. 누군가의 떨림이 나를 감동시키고, 나의 떨림이 누군가에게 깊은 잔상을 남길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 떨고 있니?
괜찮아, 그건 네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