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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Apr 21. 2021

인스타그램, 대체 그게 뭐라고...

일찍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SNS를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굳게 믿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꽤 오래전, 호기심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이 하나둘 나의 계정을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알긴? 원래 SNS라는 게 그렇게 저렇게 다 연결되는 시스템 아니던가. 나는 그 놀라운 연결성에 그야말로 놀라버렸고, 계정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탈퇴했다.  


이쯤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 사람, 아무래도 뒤가 구린 거 같아. 남의 돈이라도 떼먹었나? 죄를 지은 게 많은 모양이군.'


잠깐, '뒤가 구리다'는 관용구를 검색해보니 '숨겨 둔 약점이나 잘못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의미대로라면 나는 뒤가 구린 사람이 맞다. 남 모를 약점 몇 개는 고이 잘 숨겨두었고, 살아오면서 잘못을 저지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하지만 남의 돈을 떼먹거나 사기를 쳐서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도록 꼭꼭 숨어야 할 만큼 죄를 지은 일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그리 발 빠르게, 빚쟁이를 피해 야반도주하듯 SNS를 탈퇴해야 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가장 큰 이유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사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사람들과 특정 공간에서 나를 보여주며 소통한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확실히 온라인 세상은 오프라인보다 오픈되어 있었고, 마치 광장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그 느낌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연락하거나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피할 도리가 없을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당시의 나는 TV 프로그램 <동물의 세계>에서 표범을 피해 본능적으로 도망치는 영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SNS를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딱히 보여줄 게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들만큼 대단할 것도, 화려할 것도 없이 그냥저냥 살아가는 일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알았다. 나는 질투가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의 SNS를 하루 종일 쳐다보며 질투를 하고 있기엔 내 소중한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부러워할 거면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 그런 이유로, 나는 퍼거슨 감독의 말에 동의했다. 딘의 노래 '인스타그램' 가사도 이런 나를 부추겼다. 인스타그램 속 잘난 사람들을 보며 자기 마음속 깊이 파인 결핍의 구멍을 어쩌지 못하는 '인스타그램' 속 화자, 그도 '그렇게 시간낭비를 하고 있다'며 자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밀려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세상이라는 기다란 끈에 구슬처럼 연결되어 있는 SNS 속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만 그 끈에서 떨어져 나와 보석이 되지 못한 기분도 들었다. 마음이라는 건 참 번거롭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요물이다. 관계가 두렵다면서 동시에 관계를 원하고 있었고, 보여줄 게 없다면서 실은 누구보다 나를 보여주고 싶었고, 부러움에 질투를 느끼면서도 매력적인 그들과 연결되고 싶었다. 그랬다. 시간 낭비 운운하며 SNS를 멀리 했지만, 나는 사실 SNS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회피했거나 혹은 게을렀을 뿐.  


그렇게 나는 덜컥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말았다. 인스타그램이 무슨 죄가 있겠나. 뜬구름 같은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죄라면 죄겠지. 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의사의 손에 주어진다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 또한 칼이지 않은가. 어쩌면 붓다가 말한 인드라망의 세계가 SNS를 통해 구현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만 몰랐을 뿐 이미 SNS 속 세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의 영향을 주고받는, 걸림 없고 막힘없는 공간이 된 지 오래였다. 마음을 좁게 쓰면 결핍과 과시, 시기와 질투가 넘나드는 공간이지만 마음을 크게 쓰면 소통과 공감, 배움과 나눔, 일상의 웃음과 휴식과 위로가 오고 가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뒤늦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긴 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올리진 못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아직은 서툴고 어색하다. 또다시 스멀스멀 걱정이 밀려온다. 일단 내 주변 친구들 중에는 인스타그램을 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는데, 내 계정을 팔로우해 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신경 쓰인다. 사진을 올려도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하트를 눌러주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너무 창피할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인스타그램이라는 것은 이미지의 세계다. 무의식적이더라도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취사선택해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이미지를 포장하고 부풀리기도 하고, 그렇게 부풀려진 이미지에 속기도 한다. 특별히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아무 사진이나 막 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신중해지고 피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네가 인스타그램을 한다고?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거 봐, 벌써 귀찮고 피곤하지? 그렇게 될 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 그래서 그동안 안 했던 건데... 푸훗, 자신 있으면 어디 한 번 잘해 보든가.'


막상 인스타그램을 하려니 마음속 목소리가 계속 나를 비웃는다. 대체 인스타그램이 뭐라고?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 올리는 거, 그게 뭐 대수라고 이렇게 복잡하게 고민만 하고 앉아있는지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그게 다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다. 사진 속에서나마 잘나 보이고 싶으니까. 


아무래도 한 장의 사진을 올리기까지는 당분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엔 계정을 삭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덕질' 중인 어느 가수의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는 것이 어느새 소소한 즐거움이 되어 버렸기에... 그 일은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세상과 연결되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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