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당신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 가까스로 의식을 차리고 깨어났는데 눈앞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낯선 얼굴들이 보인다. 걱정과 안도감이 뒤섞인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인다.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
"엄마..."
"여보..."
당신은 당황스럽다. 아니, 나에게 엄마라니. 여보는 또 무슨. 나는 결혼을 한 적도 없는데...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 사람들이 작정하고 나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당신의 깊은 의심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팩트다. 다만, 당신이 기억하지 못할 뿐.
그렇다. 당신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최근 십수 년의 기억을 모조리 잊어버린 것이다.
드라마도 아니고, 현실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두 배우가 어쩌다 시골마을 작은 슈퍼의 사장이 된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았다. 특히 슈퍼의 오랜 단골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방송이 끝난 후까지도 유독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사연이 바로 위의 이야기다.
결론부터 말하면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엄마는 여전히 자신의 결혼과 출산, 자녀들의 성장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평소 써왔던 일기를 읽으며 기억을 떠올려보려 했으나 실은 과거 기억을 새로 저장한 것에 가깝다. 얼마 전 갓 제대한 아들은 자신이 엄마와의 과거를 다 기억하고 있으니 엄마가 기억을 되찾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말하지 못한 그동안의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엄마와 아들의 얼굴은 누구보다 밝고 환해 보였다. 과거의 기억은 사라졌지만 현재의 기억을, 그것도 좋은 기억만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사라져 버린 기억이 더 이상 궁금해지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 기억할 수 있는 최고의 기억만을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소중한 사람과의 오랜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은 나로서는 실감할 수 없는 상태다. 상처가 되었던 기억이나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라면 차라리 잊어버리는 편이 낫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 누군가 '기억을 지울래? 간직할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간직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기억이란 내가 살아온 시간의 궤적이자 삶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기억은 여러모로 왜곡되고 믿을 게 못된다고들 말한다. 알코올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끔은 시간의 단면들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친구가 집에 놀러 온 날, 집 근처에 새로 생긴 햄버거 매장에서 버거 세트를 포장해와서 먹은 기억은 있는데 막상 매장에서 햄버거를 주문하고 픽업한 기억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 햄버거 매장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친구와 햄버거를 먹은 일이 꿈속의 일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억 속에서 산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했던 공간을 기억하고, 맛을 기억하고, 그 날의 색감과 향기와 감촉과 멜로디와 공기를 기억한다. 그 기억들이 현재 다시 떠오를 때, 나는 나를 '나'로서 인식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를 인식하고 또다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기억을 가슴에 새긴다.
그러니 어떤 이유로든 십수 년의 기억이 백지처럼 사라진다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아마도 나는 우주의 미아가 된 기분에 휩싸일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미궁에 가깝다. 기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를 존재하게 하는 물성을 지닌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이야기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도 바로 기억이 가지는 이런 물성 때문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도 처음엔 슬프게 다가왔다. 그러다 문득 엄마와 아들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기억은 전부 사라졌지만 엄마는 분명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엄마의 마음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사랑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어떤 무언가를... 그렇지 않고서는 기억을 잃은 자의 얼굴이 저리 밝고 환할 리가 없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나빌레라>는 알츠하이머 환자인 일흔의 할아버지(심덕출)가 인생의 마지막 자락에서 한 번은 날아오르기 위해 오랜 꿈이었던 발레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기억을 잃고 가까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던 덕출이 그토록 소중했던 발레와 발레 선생님인 채록은 기억해낸다. 몸으로 익힌 발레 동작은 사라져 버리지 않고 몸이 기어이 기억을 해내고 만다.
역설적이지만 기억이 사라져도 분명 기억되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그토록 힘겹게 버티며 사랑하며 살아온 시간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나의 기억 아카이브에 소중한 기억들을 켜켜이 채워 넣으려 한다. 슬프고 아픈 기억이라도 차별하진 않겠다.
만약 어느 순간 데자뷔를 느낀다면 그것은 오래전 사라져 버린 기억 하나가 당신의 마음에 똑똑 노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오묘한 느낌을 따라 기억이라는 신비의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고 싶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면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 하나를 발견하는 것이 될 테니... 그 기억 덕분에 나는 더욱 또렷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