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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May 14. 2021

아, 모르겠고! 아모르파티!

<유명가수전> 이승윤의 말

불안한 삶에는 때로 강력한 주문 한방이 필요한 법이다. 주문의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어서 흔들리는 마음을 중심으로 딱 낚아채 단단하게 묶어버린다.


주문과 함께 내 마음에 굵은 기둥 하나가 마법처럼 생겨난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어떤 강력한 태풍에도 뽑히지 않을 기둥이다. 그 기둥을 꽉 붙들고 있을 때, 불안하게 흔들리는 감정의 부스러기들은 내 것이 아닌 양 이내 흩어져 버린다.   


흔한 예를 들면 '할 수 있다!', '파이팅!' 같은 말들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어쩐지 마력의 시간이 다한 듯하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거울을 보며 '할 수 있다!'를 외쳐보지만 주문 같은 건 걸리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일일 드라마의 캔디 같은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파이팅!'도 마찬가지. 운동선수도 아니고,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새로운 주문 하나가 마음에 들어왔다. '아, 모르겠고!' 당분간 이 말은 내 마음을 꽉 붙들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힘이 있다.


'아, 모르겠고!'는 JTBC <유명가수전> 김연자 편에서 가수 이승윤이 스쳐가듯 내뱉은 말이다. 갓 유명해진 후배 가수들이 김연자 님의 노래를 재해석에 부르는 시간이었다.


전 국민의 흥을 사로잡은 '아모르파티'에 대한 상찬이 이어졌다. 이 노래가 얼마나 멋지고 또 부르기 힘든 곡인지, 이 노래를 재해석하게 될 가수는 얼마나 부담되고 어려울지 진행자와 모든 출연자가 걱정 반, 놀림 반으로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원곡의 무게가 하늘 높이 붕 떠올랐고, 이 곡을 부르게 될 가수는 그 높이를 뛰어넘거나 적어도 그 높이 언저리만큼은 다다라야 했다.


'나라면 떨리고 부담돼서 절대 못해낼 거야. 무려 김연자 님 앞에서 아모르파티를...' 


나도 모르게 '아모르파티'를 부르게 될 다음 가수에게 투사되어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배포와 강심장이 필요한 타임이었다. 아모르파티를 부를 분이 누구냐는 진행자의 말에 이승윤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아, 모르겠고! 접니다."


JTBC <유명가수전> 방송 화면


강력한 외침이라기보다는 작지만 단호한 주문처럼 들렸다. '아, 모르겠고!'라는 한마디에 스튜디오의 공기가 순식간에 전환되었다. 불안과 걱정은 사라지고, 모든 힘이 이승윤에게로 넘어왔다. 이제 그는 자신이 내뱉은 주문의 힘으로 무대 위에서 자기만의 흑마법을 펼칠 준비가 된 것이다. 역시나 이승윤의 '아모르파티' 무대는 원곡과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로 재해석되었다.   


마음이 불안해지고 쉽게 흔들리는 이유는 쓸데없이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말들이 만들어내는, 힘을 뺏기는 주문에 걸려버리기 때문이다. 내 힘을 빼앗아가는 악마의 속삭임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주문이 바로 '아, 모르겠고!'다.


쓸데없는 잡생각들이 이 '모르겠다'는 말 한마디로 사라져 버린다.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못 할 것 같다'는 불안도 모르겠고, '실수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모르겠고, '저 사람이 나보다 잘하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도 모르겠고, '잘해야 하는데' 하는 욕심도 모르겠다. 다 모르겠으니, 그냥 내가 잘 아는 걸 해버리그만이다.


세계 4대 생불로 추앙받던 숭산스님의 유명한 말씀이 바로 ‘오직 모를 뿐’이다. 왠지 '아, 모르겠고'라는 주문이 숭산스님의 말씀과도 통하는 느낌이다. 스님은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을 화두처럼 붙잡고 살아가다 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직 할 뿐’이라는 행이 살아난다고 했다. 잡념이 사라진 도화지 같은 빈 마음에서 오직 이 순간 내가 행해야 할 진짜의 것들이 빛처럼 떠오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그저 지금 해야 할 것을 할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반짝이는 몰입의 순간이다.   


아모르파티(Amor fati)는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말이다. 오랫동안 나는 내 운명 같은 걸 사랑하는 일 따위는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운명을 원망하거나 운명을 바꾸고 싶은 사람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내 운명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끔찍이 사랑해서 집착하고 연민하는 나르시시스트. 분명하지만 가혹한 진실은 지독하게 집착하는 것은 절대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를 찾겠다고 하면서 나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던 것이겠지. 나로부터 멀어진 영혼은 삶을 나답게, 반짝이는 몰입의 상태로 살아가지 못한다.   


'아모르파티' 노래 가사처럼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으니 자신에게 실망하지 말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아야겠다.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간들을 품에 안고 이제 가슴이 뛰는 대로 흥 나게 한번 살아봐야겠다. 그러려면 주문이 필요하다. 에너지 뱀파이어들을 물리치고 우주의 에너지를 끌어모을 흑마법이다.    


아, 모르겠고! 이제부터 나는 아모르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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