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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May 17. 2021

'나대자' 여사가 되어볼까?


엄마는 유교걸이었다.


엄마는 '유교걸'이었다. 풀이하면,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여자. 엄밀히 말하면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유교걸'의 진정한 조상님은 나의 외할머니였다. 유교를 종교로 보아야 할지 철학이나 사상으로 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릴 적 외할머니의 종교는 뭐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엄마는 '유교'라고 답해주었고, 어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불교신자였던 친할머니와 달리 유교를 믿는 외할머니는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친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유교'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안동 권'씨였던 외할머니의 집안은 대대로 유교를 믿는 가풍이었다. 어린 내가 불교가 뭔지, 유교가 뭔지 제대로 알 수 있었겠냐마는 어쩐지 유교는 딱딱하고 엄격하고 재미없는 교과서처럼 느껴졌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외할머니의 당당함과 올곧음이 그런 이미지를 더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눈에도 외할머니의 척추는 언제나 꼿꼿이 펴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외할머니에게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 어른이 된 엄마는 내가 아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보수적이었다. 어딜 가나 얌전히 정숙하게 앉아 있어야 한다, 어른들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잘난척하며 자신을 과시하기보다는 늘 겸손하게 자기를 낮춰야 한다... 는 잔소리(나에겐 잔소리였지만, 엄마에겐 가르침이었겠지)를 수시로 듣고 자랐다. 스무 살이 훌쩍 넘은 딸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거나 귀를 뚫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는 것도 금지사항이었다. 나름 반항 아닌 반항을 하기도 했지만 내면이 무른 나는 늘 엄마의 의지에 항복하고 말았다.



겸손 따위 개나 줘버려?


지금이야 독립을 해서 내 맘대로 살고 있고 엄마도 과거에 비하면 엄청 자유로운 신여성이 되셨지만 여전히 내 마음에 지문처럼 남아있는 족쇄 하나가 있다. 과시하기보다는 늘 겸손하게 자기를 낮춰야 한다는 것. 사실 이 말은 모든 옛 성현들의 말씀이자 진리에 가깝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을 테다. 나도 내가 성숙한 어른이 되어 과시와 자랑보다는 겸손과 겸양을 실천하면 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숭고한 이상일뿐, 겸손과 겸양을 어설프게 흉내 내다간 자존감이 바닥이 되는 경험을 하고 만다. 엄마에게 배운 대로 겸손하게 행동했더니 세상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물론 겸손을 좋게 봐주는 어른들도 계셨지만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겸손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크게 많지 않았다.



'자기 PR'은 과시가 아니야


자기 PR의 시대 아닌가. 어떻게든 '나'라는 브랜드를 알려야 할 시간에 가만히 있어도 나를 알아주길 바랐다. 굳이 내 입으로 나의 능력을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먼저 알아봐 주길 기대했다. 제 아무리 절세미인이거나 세기의 천재일지라도 방구석에만 있으면 누가 알아주겠나.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강점이 있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라는 어필은 심지어 자랑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명함과 같은 것일 뿐.


그런데 여태 나는 자기소개에 가까운 사소한 PR조차 자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자기 PR을 잘하는 사람을 마치 사기꾼이라도 되는 양 빨간 안경을 쓰고 바라볼 수밖에... 이쯤 되면 자기 PR을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프리랜서로서 그냥저냥 먹고살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사실 말이 그냥저냥 먹고 산 것이지, 생존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분간하지 못 한 채 아마추어처럼 살아왔다고 보는 편이 나을 테지만.   


'유교걸'인 엄마를 핑계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어쩌면 내가 겸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건강한 자기표현을 자기 자랑을 떠벌이는 것으로 오해하고, 존재감을 내세우지 않으며 마냥 양보하는 것을 겸손이라 착각했다.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잘 살면 됐지, 굳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자기 PR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수가 새로운 음반을 발표하고 배우가 새 영화를 개봉하는 데는 반드시 홍보가 필요하다. 이때의 홍보가 결코 자기 과시는 아니다. 그동안의 노력과 자신이 창조해낸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행위, 그로 인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로 홍보가 아닐까.


자기 PR이나 홍보를 은근히 터부시 했던 이유는 그 속에 상업적으로 이득을 취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숨겨진 의도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PR과 홍보는 돈을 벌겠다는 직접적인 의도이니까. 그렇다면 돈을 벌겠다는 의도가 나쁜 것인가? 그동안 내 마음 한 구석엔 돈을 벌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돈을 좋아하면서 돈을 좋아하지 않는 척하는 이중적인 태도 말이다.

 


사람들이 나를 몰라보고 돈은 많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몰라보고 돈은 많았으면 좋겠다. 요즘 흔하게 떠도는 이 말은 흡사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린다. 아빠나 엄마가 재벌이라면 가능할까? 아니다. 재벌의 자녀들을 사람들은 어떻게든 알아보게 되어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나를 몰라보면서 돈이 많은 상황은 망상에 불과하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또 창작품을 세상에 발표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자신을 알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렇다. 한마디로 말해 나대야 한다.   


<씨네 21> 이다혜 기자가 말하는 '프리랜서로 일할 때 주의할 10가지' 가운데 첫 번째도 바로 '나대기'다. 쑥스러움, 부끄러움, 낯가림이 심해 나댈 수 없다면 세상은 당신의 존재를 알지 못할 거라 말한다. 마치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 사회는 나대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특히나 나대는 여성들에 대한 평가는 더 가혹했던 게 현실이다. '나대다'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깝신거리고 나다니다, 얌전히 있지 못하고 철없이 촐랑거리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깝신거리다'라는 단어의 어감이 낯설어 다시 사전을 찾아보니 '고개나 몸을 방정맞게 자꾸 숙이다'라는 의미를 뜻한다. 어쨌거나 다 부정적인 뉘앙스다.  



'나대자' 여사가 되어 볼까?  


이제는 '나대다'의 의미를 재해석할 때가 된 것 같다. 새로 정의한 '나대다'의 의미는 이렇다.


나대다 [나대다]  

동사

1. 당당하고 자신 있게 자신과 자신의 일을 이야기하다.  

2. 얌전함을 거부하고, 자신을 찾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다니다.

3. 성숙하게 자기를 표현하며, 자기 존중감이 높다.


'나대다'라는 단어의 새로운 의미가 하나씩 덧붙여져 갈 때, 나처럼 쑥스러움 많고 부끄러움 많은 사람들에게도 자유가 열리지 않을까.


<놀면 뭐하니>에서 개그맨 홍현희의 부캐였던 '나대자' 여사


어른이 되어 엄마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니, 엄마도 '유교걸'이었던 엄마의 엄마 때문에 젊은 날들이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 같다. 이제 조금씩 엄마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다. 요즘의 엄마는 70세가 되어 그림도 배우고 전시회도 열며 신나게 살고 계신다. 내 눈에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색의 가방을 자꾸만 사들이는 요즘의 엄마가 보기 좋다. '유교걸'이던 엄마는 이제야 억눌러왔던 욕망을 꺼내는 중이다.


요즘의 엄마는 나에게 당당하고 멋지게 살라며 잔소리가 아닌 진정한 가르침을 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쭉 그렇게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던 엄마였는데, 세상사에 지쳐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이제부터 나도 한번 나대며 살아봐야겠다. 가끔 자기 자랑도 떠벌이고 과시도 하면 또 어떤가. 다른 이의 자랑에도 손바닥 불나게 박수를 쳐줄 수 있다면, 그렇게 서로 자랑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면 그것도 멋지지 않은가. 흥에 겨워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들썩이고 촐랑거리게 되더라도 놀라지 말아야지. 사람 사는 일에 완벽한 건 없으니까.


우리, 이것저것 눈치 보지 말고 '나대자 여사'가 한번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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