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동료나 상사, 혹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오늘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면 그건 걱정일까, 욕일까?
답은 질문자의 의도와 그 질문을 받은 이가 느끼는 그 날의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간단하게 네 가지 경우의 수로 한번 생각해보자. 편의상 질문자를 A, 질문을 받은 이를 B라고 칭해보겠다.
첫 번째 상황. B는 실제로 몸이 아프다. 아침부터 몸이 으슬으슬하고 미열도 있다. 당연히 낯빛도 좋지 않다. B는 최대한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섬세한 A의 눈에 평소와 다른 B의 컨디션이 눈에 들어온다. A는 B에게 다가와 묻는다.
"오늘 어디 아파요?"
이 상황은 A의 진심 어린 '걱정'에 해당한다.
두 번째 상황. 어젯밤 일찍 잠든 덕분에 푹 자고 일어난 B는 오늘 컨디션이 매우 좋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해 커피를 마시는 B의 얼굴을 보며 A는 생각한다. 'B의 피부가 까칠하네. 화장도 잘 안 받은 것 같고. B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이런 생각이 스쳐감과 동시에 A가 B에게 묻는다.
"오늘 어디 아파요?"
B는 당황스럽다. 오늘처럼 컨디션 좋은 날이 없었는데, 내가 아파 보이나? B는 평소 칙칙하고 까칠했던 자신의 피부가 신경 쓰이면서 수치심이 올라온다. 갑자기 A의 말처럼 왠지 어디가 아파오는 기분이다. 이 상황은 A의 '오지랖'에 해당한다.
세 번째 상황. 시작은 두 번째 상황과 같다. B의 컨디션은 최고로 좋은 상태이다. 오늘은 다행히 피부도 생기 있고 화장도 잘 받았다. 오늘은 사내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사내 경쟁관계인 A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B에게 묻는다.
"오늘 어디 아파요?"
사실 A의 눈에 B는 멀쩡해 보였다. 실은 평소보다 더 빛나 보여서 A는 순간, 자신이 초라해 보일까 봐 두려워졌다. A는 B의 기세를 교묘하게 꺾어주고 싶었다. 이 상황은 명백한 A의 '신경전'이다.
마지막 네 번째 상황. B는 컨디션이 나쁘지도, 그렇다고 썩 좋은 것도 아니다. 평소처럼 조금 찌뿌둥하지만 어디가 아프지는 않은 상태. 다만 피부 상태는 늘 그랬듯이 별로 좋지 않다. 좋은 화장품을 사 바르고, 큰돈 들여 피부과 치료도 받아보았지만 좋아지는 건 그때뿐이었다. 피부는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날. 최선을 다해 팩을 하고 화장을 한 후,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다. 고등학교 때부터 B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던 친구 A는 오늘따라 숍에 다녀왔는지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에 전문가의 손길이 묻어난다. 그런 A가 B를 보자마자 묻는다. 몇 년 만에 만난 B를 보자마자 처음으로 한 말이다.
"너, 오늘 어디 아프니?"
그렇다. 이 말은 A의 돌려까기,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제 마음에 들지 않던 B의 약점을 낚아채 공격하는 전술. 한마디로 '욕'이다.
'오늘 어디 아파요?'라는 질문과 유사한 말로는 '집에 무슨 일 있어요?', '피곤해 보여요' 같은 말들이 있다. 때로 이런 말들은 '자, 네가 얼마나 힘든 지 얘기를 꺼내봐'라는 유도 신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상대의 힘든 얘기를 동정하듯 들어주며 자신의 우월감을 획득하려는 의도이다. 그 덫에 걸린 약한 자아는 의지하듯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놓지만 어쩐지 돌아오는 것은 알 수 없는 공허감뿐이다.
상대를 위한 진심 어린 걱정이 아니라면 이 말들은 가능한 삼가는 것이 어떨까. 걱정하는 말투 속에 검은 속내가 느껴질 때면 진짜로 어딘가 아파오는 듯하고, 집에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고, 잠을 푹 잤는데도 피곤이 몰려온다.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안타까움, 위로하고 싶은 순수한 의도로 묻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디 아프냐, 집에 무슨 일 있냐, 피곤해 보인다'는 류의 말들은 상대를 부정적 상태에 더 가두어 버리는 듯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위로받는 게 아니라 어쩐지 그 말이 주는 감정에 더 구속된다고 할까.
진정한 관심과 위로는 해방의 말이 되어야 한다. 그 사람의 기분이 더 좋아지게 하는 말, 지금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말이 그를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말이다.
"오늘 점심에 맛있는 거 먹을래요? 내가 살게요."
"00 씨는 활짝 웃는 모습이 정말 예뻐요."
"창밖을 좀 봐요. 하늘이 파랗네요."
"날씨도 좋은데, 점심시간에 잠깐 산책이나 할까요?"
우리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말들은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