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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May 27. 2021

예민함이 특권이 될 수는 없다.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들으려고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듣게 되었다. 그들의 어조에 실린 강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왔기 때문이다.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들은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일하는 스텝들인 것 같았다. 그들이 배우의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대화의 정황상 모두가 선망하는 유명 배우와 함께 일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대화의 요지는 이랬다. 겉으로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이지만 뒤에서는 얼마나 까칠하고 예민하게 구는지 같이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더 이상 받아주는 데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 말들 사이에 다소 격한 감정이 오고 갔다. 진실이란 한쪽 말만 들어서는 알 수 없는 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내 마음은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편이 되어 주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나 역시도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글과도 같은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강자가 되어야 하는데, 강자가 되는 비겁한 방법이 하나 있다. 힘이 없거나 약해 보이는 이들을 교묘하게 짓누르는 방법이다. 물리적 힘으로 무자비하게 짓밟는 것과는 다르다.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임을 뾰족하게 내세우면서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위치로 자신을 끌어올리고는 자기 발 밑에 있는 이들로 하여금 알아서 비위를 맞추게 하는 전략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기분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나는 이런 부류들의 먹잇감이 되기 쉬웠다. 그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먼저 행한 배려는 나를 만만한 상대로 여기게 만드는 빌미가 되었다. 공감 능력이 발달한 사람은 약자가 되기 쉽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명언은 그렇게 탄생된 것일 테다.    


자신의 유별난 예민함을 과장해 개성으로 삼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예민함을 개선해야 할 결함이라 여기며 살아온 나에게는 그들의 태도가 매우 오만하게 느껴지는 거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칫 나의 예민함으로 인해 타인에게 불편을 줄까 봐 노심초사했던 시간, 둥글둥글 털털해지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몹시 공허하게 느껴졌다.  




어떤 이유로든 예민함은 특권이 될 수 없다. 그저 다양한 성격과 기질 가운데 하나일 뿐. 어쩌다가 지금의 얼굴로 태어난 것처럼 어쩌다가 그런 기질로 타고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특권이 아니라 숙명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반드시 고쳐 없애야 할 결함도 아니다.   


화가 많은 기질을 타고 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자신의 화를 달래며 조절해나가야 하듯 예민한 기질을 타고 난 사람은 평생에 걸쳐 자신의 예민함을 섬세하게 깎고 다지며 부드럽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고혈압 환자들이 혈압약을 먹듯이 매일매일 예민한 자기를 살피며, 취약해지기보다는 섬세하게 자신을 회복해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안다. 강자인 척 예민하게 굴었던 그들이 실은 제일 약자였다는 것을. 날카롭고 뾰족하게 깃털을 세워 선제공격을 하지 않으면 홀로 온전히 강해질 수 없는 이들... 예민함을 과장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야만 희미한 자아가 겨우 또렷해지는 듯한 착각에 빠져있는 이들이었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은 허약한 내면의 소유자였음을 고백한다. 나름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상처 주었던 일들이 적지 않았다. 자신을 희생양의 위치에 놓기가 더 쉽지만,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누군가의 삶이 마냥 희생양으로만 설명되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또한, 타인을 배려했다고 하지만 온전한 배려는 아니었다. 홀로 온전히 강해질 수 없어 타인의 마음을 사기 위한 배려였다. 나의 예민함이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그로 인해 다시 화살이 나에게 날아올까 봐 노심초사했던 불안이 친절한 배려의 가면 뒤에 감춰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공감능력이 발달한 사람이 약자가 되는 게 아니라 공감능력을 균형 있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약자가 된다. 그러니 나는 상처 받지 않으려 예민한 촉수를 세워 타인의 감정을 감지할 게 아니라 좀 더 가슴을 열고 '섬세하게' 타인의 마음에 귀 기울여야 했다. 내게 타고난 공감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사용하는 게 맞는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기질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이들이 두렵다. 언제든 그들이 날리는 선제공격의 대상이 될까 봐 불안해진다. 링 위에서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강펀치를 맞고 KO패 하기는 싫다. 끔찍하게 자존심이 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먼저 선제공격을 날리는 비겁함을 무기로 삼고 심진 않다. 비겁한 강자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그들보다 내가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가진 무기를 따져보니 쓸 만한 게 별로 없는 것만 같다. 


예민함을 특권으로 삼는 이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나 역시 '특권'을 가지고 싶었다. 나의 노력으로 정정당당히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있다면 프로의 세계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는다면 나는 누구보다 강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이 특별히 나를 더 사랑하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나는 최고 실력의 소유자가 되지 못했다. 최고라는 특권으로 우쭐해할 기회를 주지 않은 신에게 감사한다. 나는 지금 아무런 특권 따위 없어도, 특별한 가면을 쓰지 않아도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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