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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Oct 29. 2022

자전거
; 로켓보다 빠른 쾌감

(때로 나를 웃게 하고 불쑥 눈물짓게 하는) 감정의 사물들 Ep.06


쾌감 [쾌감] : 상쾌하고 즐거운 느낌




한동안 하루에 20Km 가까이 자전거를 탔다. 집에서 가양대교 북단까지 갔다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당산철교 혹은 서강대교 북단을 찍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내가 사는 동네는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나 같은 초보 라이더들도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단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 하지만. 


자전거 도로 옆 벤치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노라면 시원하게 질주하는 각양각색의 자전거들을 만날 수 있는데, 예쁜 자전거를 볼 때마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물욕이 성큼 기어 올라온다는 점이다. 그중에 유독 내 시선을 잡아끈 자전거가 있었으니 ‘메이드 인 런던’으로 알려진 영국 B사의 자전거였다. 미니벨로 자전거다운 작은 바퀴와 섬세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나를 사로잡았다. 


며칠을 벼르다가 집 근처 자전거 가게에 내가 사고 싶은 색깔의 B사 자전거가 입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저녁 방문해 꿈에 그리던 자전거를 품에 안았다. 나에겐 그 어떤 최신형 외제차를 사는 것보다 벅찬 쾌감이었다. 


문제는, 자전거가 너무 도도했다. 곁을 쉽게 주지 않았다. 일단 자전거를 접고 펴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유튜브로 ‘B사 자전거 접는 법’을 검색하니 영상이 꽤 많았다. 여러 개를 플레이해보면서 가장 이해가 잘 되는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밤새 자전거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다음 날, 새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가을 하늘은 맑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왔다. 코로 숨을 깊이 들이마시니 몸이 절로 가벼워졌다. 어젯밤 연습한 대로 접혀있던 자전거를 펼쳤다. 초보 티가 나지 않도록 괜히 능숙한 척했다. 


자, 이제 새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한번 달려볼까. 그러고 보니 ‘구름이’는 자전거의 형태는 갖추었지만 한 번도 달려본 적 없는 자전거였다. 내가 페달을 밟아주지 않으면 ‘구름이’의 두 바퀴는 스스로 굴러갈 수 없었다. 


‘구름이’에게도 땅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았다. 새 자전거라 그런지 융단을 깔아놓은 듯 부드럽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구름이’가 자전거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첫 순간이었다. 도도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구름이’가 내게 기꺼이 마음을 내주었다. 녀석, 도도한 게 아니라 낯을 가린 것뿐이었구나. 


어느새 우리는 하나가 되어 달리고 있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탁 트인 자전거 도로 위에서 보이지 않는 바람을 가르며 질주했다. 페달을 점점 빠르게 돌리니 ‘구름이’도 그 리듬에 맞춰 속도를 내었다.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는 누구보다 스릴 넘치는 한 팀이었다. 


햇살이 강물에 내려앉아 반짝였다. 우리는 로켓보다 빠르게 대기권을 뚫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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