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 달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 학교 앞에서 사 온 병아리가 훌쩍 자라 거실 소파 위를 날아다니던 기억 때문이다. 병아리도, 그렇다고 아직 닭도 아닌 괴생명체가 제대로 날지도 못하면서 파드닥 날갯짓을 하던 소리는 공포로 느껴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그 괴생명체는 친척 할아버지에 의해 백숙이 되었고(긴 과정은 생략한다), 나는 그놈으로부터의 해방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숙은 먹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 괴생명체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살았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른들의 세상엔 괴생명체 외에도 생각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은 법이니까. 거리의 비둘기 떼를 피해 저만치 돌아가거나 닭고기를 잘 먹지 않는 것이 무의식에 남아있는 그놈에 대한 공포의 상흔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몇 년 전이었나, 불현듯 나는 그 괴생명체를 떠올리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불현듯'은 아니었다. 이유는 있었다. 날개. 날개에 대해 생각하다 그놈의 어설픈 날갯짓이 떠올랐던 거다.
인생이 자꾸만 까마득한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던 날들이었다. 이제 바닥을 쳤나 싶으면 그 아래 또 다른 바닥이 보이고...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던데 바닥을 칠 손의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것만 같았다. 그 시간을 통과하던 내게 위로가 됐던 것은 음악이었다.
그 시절 내가 자주 듣던 음악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날개. 가사에 '날개'라는 단어가 나왔다. 날갯짓을 하라고, 날 수 있다고, 네가 떨어지는 이유는 너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라고...
fall to fly 날기 위해
내게 날개가 있다는 걸 알기 위해
견뎌요 거친 바람 달려든대도
맞서요 거센 비에 휩쓸린대도
우뚝 솟은 어깻죽지에 푸득 거리며
비상의 날갯짓 그날은 오죠.
- 이승환 <Fall To Fly>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 이승열 <날개>
나는 알아 내겐 보여
그토록 찬란한 너의 날개
겁내지마 할 수 있어
뜨겁게 꿈틀거리는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 러브홀릭스 <버터플라이>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 임재범 <비상>
노래 가사가 다 나를 위한 응원가로 들렸다. 내게도 날개가 있다면 멋지게 하늘을 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내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나는 추락하고 있는 거였어. 날개를 찾아야 해. 날개를 찾자.
이런 생각에 다다랐을 때, 나는 잊고 있었던 그 괴생명체를 떠올렸고 왠지 그놈에게 미안해졌다. 그놈은 내가 비웃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든 날아보겠다고, 자기도 새가 한번 되어보겠다고 퇴화된 날개를 파드닥거렸던 거였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며 인간에게 날개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었다.
보이지도 않는 날개의 흔적을 찾겠다고 파드닥 거리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울까봐 나는 팔을 뻗지 않았다.
괴생명체에게 마음을 빚진 나는 내 등에서 날개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단은 팔을 활짝 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죽어라 흔들 것이다.
지나가다 어느 건물 꼭대기에서 그런 나를 보더라도 비웃지 말아 달라. 그냥 못 본 척 가던 길을 가달라.
혹시 당신이 '애쓰고 있구나' 그저 마음으로 한번 인사를 건네준다면 나는 더 용기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