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마트에서 가볍게 쇼핑을 하고 집 근처 ‘작은 도서관’에 들렀다. 서가에서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없어 직원분께 부탁을 드렸는데, 잠시 후 그 직원분께서 반가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어머님, 책 찾았어요!" 책을 찾아주신 건 고마웠지만 기분은 별로였다. '어머님'이라는 호칭 때문이었다. 물론 그분을 탓할 마음은 전혀 없다. 결혼을 안 했고 아이도 없지만 아가씨라 불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이 마흔을 훌쩍 넘겼으니 객관적으로 볼 때 누군가의 엄마로 보였을 것이 당연하다. 여자 나이 마흔을 넘기니 한 때 동안이라 불리던 얼굴도 간데없고 축 처진 볼살과 눈가 주름만 남았을 뿐이다. 게다가 나는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고 직장인들이라면 절대 오지 않을 낮시간에 도서관을 찾지 않았던가.
다만 기분이 별로였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일정 정도 나이를 넘긴 여자에게 그 사람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어머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도 되는 걸까? 그것이 과연 적절한 호칭일까? 하는 것이다.
사실 어머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진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언젠가 낮에 은행에 갔을 때도 친절한 남자 직원분께서 너무도 정중하게 "어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고 물었었다. 겉모습은 비슷한 나이 때로 보여도 각자의 개별적인 인생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부부도 있을 수 있고, 아이를 너무나 갖고 싶지만 생기지 않아 괴로운 부부도 있을 것이며,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아이를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보낸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도서관이나 은행, 기타 다른 장소에서 '어머님'이라 불려진다면 기분이 어떨까?
내 주변에는 마흔이 넘었지만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꽤 있고,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은 친구들도 적지 않다. 그들도 '어머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기 싫다고 언젠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모든 여성들이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님이라는 호칭은 나이가 적어도 서른을 넘으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프레임 안에서 자연스레 불려진 호칭일 것이다. 그 시스템에서 벗어난 자는 언어에서조차 소외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어머님'이라는 일방적 호칭이 폭력이라고까지 얘기한 적 있다. 어머님 말고 다른 호칭은 없을까? 그냥 회원님이라든가, 고객님이라든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최근 보았던 한 TV광고가 떠오른다. 아이를 위해 공룡 책을 재미나게 읽어주는 엄마가 있다. 여기까진 늘 봐왔던 '화목한 가정, 따뜻한 엄마'라는 클리셰를 따라간다. 반전은 아이가 잠든 후에 일어난다. 아이와 함께 공룡 책을 보던 엄마가 스마트 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그 위로 엄마의 목소리가 흐른다. "준서야 엄만 공룡 안 좋아해. 로맨스 좋아해" 이 카피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광고 속 엄마가 너무 솔직하고 귀여워서. 엄마도 개인적 취향이 있는 법이다. 엄마라고 해서 아이를 위해 무조건 취향까지 희생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분명 엄마로서의 정체성도 소중하지만, 개인의 정체성 또한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유치원이나 학교 같이 엄마로 존재해야 할 때 말고, 그 밖의 공적인 공간에서 엄마들도 '어머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게 아닐까?
이것은 비단 '어머님'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아버님'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머님'이나 '아버님'은 친근한 호칭이다. 그렇게 호칭을 불러주는 이의 따뜻한 마음까지 훼손하고 싶진 않다.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레임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나 역시도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겉모습만 보고 어림잡아 판단할 때가 많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