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혜영 Jan 22. 2019

질문의 진짜 의미



어제 모처럼 엄마를 만나 밖에서 저녁을 먹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지난 주말 집에 놀러 온 6살, 3살인 두 조카 이야기인 듯했지만 실은 아빠에 대한 이야기였다.      


“둘째가 할아버지를 좋아하잖아. 할아버지가 혼자 컴퓨터를 하고 있으니까 둘째가 와서 묻는 거야. ‘할아버지, 뭐해?’ 그랬더니 네 아빠가 ‘할아버지 컴퓨터 해’ 이러더라고.”

     

상황은 그걸로 끝이었는데, 두 조카가 집으로 돌아간 후 아빠가 엄마에게 한 말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아빠가 한 말은 이랬다.  

   

“둘째가 ‘할아버지 뭐해?’하고 물었던 건 할아버지가 뭐하는지 궁금해서가 아니라, 실은 자기랑 놀아달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고 ‘컴퓨터 해’하고 말해놓고는 계속 컴퓨터만 했으니... 그걸 이제야 알았네.”

     

참고로 말하자면, 여태껏 내가 보아온 우리 아빠는 자상하거나 남을 배려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남의 속마음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기 마음이 우선이었다. (나이가 드시면서 그런 성격이 조금씩 변하기는 했지만...) 그런 아빠가 3살 손녀가 던진 질문의 깊은 뜻까지 이해해 저런 말씀을 하시다니... 내겐 놀라운 '사건'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아빠에게 살갑지 못한 딸이었다. 솔직히 아빠와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가장으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자식 문제에 있어선 멀찍이 소외되었던 아빠... 아빠는 늘 컴퓨터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가족들 사이에서 달리 할 게 없던 아빠가 컴퓨터 앞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아빠가 내게 했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거니?" "넌 대체 밤늦게까지 뭘 하고 다니니?" "방 청소는 했어?"

간섭이나 잔소리라고만 생각했던 아빠의 질문들이 실은 다른 뜻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뒤늦게 생각해본다. 아빠도 나도, 실은 질문하는 것이 서툴러서 혹은 질문의 진짜 의미를 파악하는 데 서툴러서 서로에게 등을 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3살인 둘째 조카는 유독 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아빠를 좋아한다. 화상 통화를 할 때도 할아버지가 안 보이면 항상 할아버지의 안부를 물을 정도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우리 가족 중에 아빠를 챙기는 유일한 사람이다. 3살 손녀의 사랑에 할아버지의 마음이 열린 모양이다. 다음번 가족모임 때는 아빠가 어린 손녀와 놀아주는 낯선 풍경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나 대신 살갑게 애교를 부려주는 어린 조카가 고맙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만든 두 개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