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확장과 상승’이라는 단어를 품고 산 적이 있다. 넓은 가슴으로 좀 더 가볍게 살고 싶어서. 바늘구멍처럼 좁은 마음은 ‘확장’시키고, 무겁게 가라앉는 마음은 ‘상승’시키기 위한 다짐이었다. 물론 이 단어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점점 확장하고 있고, 상승하고 있다.
‘확장과 상승’을 떠올릴 당시를 돌이켜보면, 마음이 굳게 닫혀 있었다. 발산되지 못한 에너지가 무거운 돌을 발에 묶은 채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처럼 아래로만 내려갔다. 움직이기가 싫었고 계속 누워만 있고 싶었다. 사방이 막힌 방 안에 갇혀 있는데... 그 방의 문은 나만이 열 수 있는데... 그만 비밀번호를 까먹었다. 다행히 ‘문이 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비밀번호를 기억해 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었다. 0부터 9까지 열개의 숫자로 네 자리의 비밀번호를 찾아내는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 수학에 약해 확률을 계산하긴 어렵지만 누를 때마다 '삐'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번호는 아니야... 이 번호도 아니네...
어떻게 마음의 문이 열렸는지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후에 달라진 심정 때문일까. 이제 좀 살만해졌다고 힘들었던 과거 따위 다 잊어버린 거야? 누군가가 물어도 할 말이 없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쓱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네 자리 숫자 조합으로 비밀번호를 찾아가던 중 운 좋게 문이 열린 모양이다.
며칠 전 홍콩 출신의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작가인 톤 막(Ton Mak)의 책 <천천히 쉬어 가세요>를 보다가 번역자인 이병률 시인의 글을 읽게 됐다.
"이 세상, 모든 문제의 열쇠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지요. 그렇다면 마음은, 세상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입니다...... 쉽게 지치고 상처 받는 일이 많은 당신과 이 책의 여운을 함께 하겠습니다."
'마음'이 세상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라는 시인의 글을 읽으며 내 안의 비밀번호를 떠올렸다. 아, 마음의 문을 여는 비밀번호도 결국 마음이었구나... 동어반복 같지만, 마음은 한 번도 닫혀 있던 적이 없으니까. 닫혀있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마음속에서 그저 '문'을 없애버리면 되는 게 아닐까. 칠판에 그려놓았던 문을 지우개로 쓱쓱 지우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의 칠판에 그려놓았던, 심지어 꽉 잠가 놓기까지 했던 문을 다시 마음의 지우개로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은 '확장과 상승'이라는 단어를 품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 확장하고 싶다는 마음, 상승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비밀번호가 돼 주었던 게 아닐까.
톤 막(Ton Mak)의 책 <천천히 쉬어 가세요>의 부제는 '행복한 나무늘보로 사는 법'이다. 작가인 톤 막이 '나부늘보'처럼 일상을 천천히 명상하듯 살아가며 느낀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풀어내고 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시작은 마음이 비밀번호를 찾을 수 있도록 쉬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보다. 쉬는 동안 마음 안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가 당신의 비밀번호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