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년여 전, TV에 나온 이주혁을 처음 봤다. 당시 장미여관으로 활동하던 육중완과 함께 였다. 오직 음악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힘든 시절을 겪었던 육중완은 역시나 고향 거제도에서 올라와 홍대 버스킹을 하던 이주혁이 남 같지 않았다고 했다. 버스킹 중이던 이주혁의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된 육중완은 그의 재능을 알아봤고 기꺼이 그의 조력자를 자처했다. 여기까지가 모 방송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다. 그 이후 육중완은 <MBC 듀엣 가요제>, <KBS 불후의 명곡 - 친구와 함께 편>에 이주혁과 함께 출연하며 그를 대중에게 알렸고, 자신의 소속사에 이주혁이 소속된 밴드 기프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내가 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당시 이주혁이라는 보컬리스트를 꽤나 인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일단 그는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노래를 잘했다. 잘했다기보다는 남 다르게, 그러니까 자기답게 했다. 그것이 방송을 통해 보이는 이미지에 불과하더라도, 이주혁은 소년 같은 눈망울로 우리가 이미 놓쳐버린, 저만치 버리고 떠나온 세계에서 노래하는 듯했다. 그것이 내 속된 마음을 건드렸던 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수 없었던 사실은 그 시절 이주혁은 순수하거나 혹은 미숙했다. 여기서 말하는 미숙함이란 세련된 무대매너나 노련한 가창력의 부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소년으로서, 아직 어느 만큼 성장하지 못한 자가 보여주는 순진함이라고 할까. 그 순진함이 그를 다르게 보이게 한 건 부정할 수 없으나 한편으로 그 순진함이 보는 이를 불안하게 했다. 방청객과 마주한 무대에서 그는 긴장감을 숨기지 못해 눈동자가 흔들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자기를 비추는 조명과 시선들을 그가 아직은 감당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 모습이 더 깊이 다가왔던 것은 숨기고 싶은, 혹은 극복하고 싶은 나의 어떤 모습을 그에게서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수줍음과 낯가림, 그로 인한 불필요한 긴장과 부자연스러움, 더 나아가고 싶지만 어떤 두려움에 이내 움츠러들고 마는 유약함... 나는 나를 응원하듯 마음으로 이주혁을 응원했었다. 그가 부디 이 험한 세상을 잘 견디고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길...!
그리고 다시 시간은 흘렀고, 나는 그를 한참 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어젯밤 <JTBC 슈퍼밴드>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를 다시 보았다. 기프트 이주혁? 그때 그 육중완이랑 같이 나왔던 그 가수? 나는 몇 번이고 그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 그 이주혁이 맞는데, 뭔가 미묘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달라졌다. 그의 노래도, 그라는 사람도... 그는 좀 더 단단해져 있었고 자유로워 보였다. 힘이 생겼지만 강하지 않았고, 유연해졌지만 더 깊이 몰입했다. 그리고 그가 부른 '빈센트'는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죽은 고흐가 천상에서 내려와 노래하는 목소리 같았다.
몇 년 사이, 부쩍 성장한 배우나 가수를 볼 때면 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묻곤 한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그 비결이 있다면 나도 좀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서 일까. 그가 스스로를 단련해온 시간의 무게와 깊이를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아마도 무슨 일이 벌어지긴 벌어졌구나,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성장할 순 없는 법이지 하고 자문자답할 뿐이다(물론 기꺼이 그의 조력자가 돼 주었던 육중완의 역할도 큰 몫을 했으리라).
이번 <JTBC 슈퍼밴드>에 나오는 음악 천재들에게서도 같은 걸 느꼈다. 그들은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노력과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노력과 연습은 어떤 성공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음악 그 자체를 위한 노력과 연습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심사하는 프로듀서 앞에서 자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죽지도 않는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그저 오랜 시간 자신들이 해오던 것을 그냥 할 뿐이다. 그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은 그동안 너무 외로웠단다. 이번 기회를 통해 같이 음악을 할 친구를 만나고 싶단다.
나는 그 '외롭다'는 말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그건 그들에게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방구석에서 오로지 음악을 위해 연구하고 연습하고 애써온 그들은 놀라운 실력을 갖게 됐지만 그 결과로 외로움을 얻었다. 아니 반대로, 외롭지 않았다면 그들이 음악을 위해 지불한 시간들은 가짜다.
이제 그들이 본격적으로 음악 친구를 만나 밴드를 결성하고 협연해 나가는 과정을 보게 될 것이다. 그 과정 또한 무척이나 기대된다. 슈퍼밴드에 출연한 모든 뮤지션들, 그리고 방구석에서 오늘도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