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혜영 Apr 26. 2019

집 앞에서 유재석을 만난다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세상의 수많은 '자기님'을 소환하다.

만약 당신의 집 앞 골목에서 유재석을 만난다면? 갑자기 유재석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는 잠깐 이야기 좀 하잔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step by step, oh~ baby...

그 옛날(?) 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뉴키즈 온 더 블럭'이라는 미국 남성 그룹이 있었다. 그 그룹의 이름을 재치 있게 빌려와 만든 프로그램 제목, <유 퀴즈 온 더 블럭>. 말 그대로 길거리에서 퀴즈를 맞추는 프로그램이다. 퀴즈를 내는 이는 국민 MC 유재석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 시간에 딱 맞춰 TV 앞에 앉아 작정하고 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비교적 한가한 시간, 습관처럼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춘다. 이내 리모컨을 내려놓고 소파에 기대앉는다. 채널 고정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던진 낚싯줄에 걸려 계획과 상관없이 끝까지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낚싯줄이 나쁘지 않다. 아니, 꽤 괜찮다. 그중에 하나가 최근 보게 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 퀴즈)이다.   


<유 퀴즈>는 단순한 퀴즈 프로그램은 아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프로그램 소개를 보면 '큰 자기 유재석과 아기자기 조세호의 자기들 마음대로 떠나는 사람 여행!'이라고 적혀 있듯이 퀴즈는 도구일 뿐, 사람을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큰 자기'와 '아기자기'는 세상의 수많은 평범한 '자기님들'을 무대 위로 소환한다.


유재석은 남녀노소,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말을 건다. 누가 국민 MC 아니랄까 봐, 사람들은 유재석과의 만남에 낯을 가리지 않는다. 한껏 마음의 문을 열며 그를 반긴다. 보조 MC이자 유재석의 파트너인 조세호의 친근함도 한몫한다. 프로그램 내내 유재석은 조세호를 '자기야'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짓궂게 놀리는 컨셉을 이어가는데, 그에 반응하는 조세호의 약간은 비굴하면서도 주눅 든 듯한, 그러면서도 절대 주눅 들지 않는 리액션이 꽤나 재미를 준다. 두 사람의 치고받는 만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쳐 있던 몸에 리듬이 생긴다.  


리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유 퀴즈>의 묘미는 특유의 리듬감에 있는 듯하다. 길거리를 걸어가는 유재석과 조세호의 스텝 바이 스텝에도 어떤 리듬감이 있다. 사람들을 만나 호들갑스레 인사를 나누고 깔깔거리다 어느 틈에 깊숙이 들어간 대화는 짧은 시간에 한 인간의 전 인생을 관통한다. 물론 하나의 인생을 단 몇 분의 대화로 다 설명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겠지만, 적어도 그 몇 분 동안 우리는 한 인생의 에센스와 마주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 리듬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유재석의 진행방식에서 오는 리듬일 수도 있고, 혹은 편집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유야 어떻든 나는 그 리듬에 몸과 마음을 맡기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웃다가 울다가, 그새 박장대소하다가 다시 살며시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마도 그 리듬 속에서 나를 닮은, 나의 부모와 친구, 이웃을 닮은 얼굴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14회 용산역 주변을 거닐던 유재석과 조세호는 역사를 전공한 20대 대학 조교를 만나기도 하고, 18년째 감자탕집을 운영하는 60대 부부를 만나기도 하고, 흑염소즙을 파는 건강원 사장님, 떡집 사장님을 만나기도 한다. 사장님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저마다 인생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역사를 전공한 20대 남자 정기훈씨는 여자 친구가 없어 외롭기도 하지만, 역사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 공간 안에서의 시간의 축적'이라는 자기만의 멋진 답을 내놓는다. 72세의 건강원의 사장님은 외상으로 사가려는 손님들이 오면 어떡할 거냐는 질문에 '외상으로 먹는 약은 효과가 없다'는 명언(?)을 남긴다. 배가 고파 전주에서 15살에 무일푼으로 서울 용산역에 올라와 떡집에서 일을 했다는 떡집 사장님은 밥을 맘껏 먹을 수 있는 떡집이 그렇게 좋았단다. 10년 넘게 떡집에서 일하다가 자신의 떡집을 차렸을 때는 세상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  


그들 중 누구는 퀴즈를 맞춰 현금 100만 원을 타 가고, 누구는 퀴즈 맞히는 데 실패한다. 물론 아쉬움은 있겠지만 어느 누구 하나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 퀴즈는 거들뿐 유재석, 조세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치 좋은 꿈을 꾸고 깨어난 사람처럼 해사해진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다시금 국민 MC 유재석에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나 길을 가다 유재석을 만난다면? 유재석이 인사를 건네며 잠깐 이야기 좀 나누자고 한다면, TV에 나오는 건 너무 싫지만, 어쩐지 거절하지 못할 것만 같다. 마치 꿈에 그리던 이상형에게 헌팅을 당하는 기분으로, 그것이 설사 도를 아시냐는 질문으로 이어지거나 옥장판을 사야만 하는 일이 될지라도, 나는 기꺼이 그에게 내 시간을 내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리듬 안에서 나의 어떤 모습이 꺼내질 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분명 나는 그의 리듬에 맞춰 울고 웃다가, 마침내 그 덕분에 내가 살아온 평범한 인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래퍼와 <리얼리티 트랜서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