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군>, 그날의 모든 '김군'을 소환하다.

진실 or 거짓. 북한군 제1광수, 그는 누구인가?

by 조혜영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건의 시작


먼저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래 그림 속 두 남자는 같은 인물일까?

movie_image.jpg 영화 <김군> 스틸 이미지. 네이버 영화

가늘게 찢어진 매서운 눈, 앙다문 입술의 모양새 등 얼핏 보면 같은 인물로 보일 수 있을 것도 같다.

왼쪽 사진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시민군 , 오른쪽 사진은 2010년 평양기념행사장에 참석했던 인물이다. 군사평론가이자 극우 논객 지만원은 두 인물이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왼쪽 사진 속 남자는 북한특수군 '제1광수'로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광주로 내려와 무고한 광주 시민을 죽이고 폭동을 일으킨 북한군이라는 것이다.


강상우 감독은 지만원에 의해 '북한특수군 제1광수'로 불려진 사진 속 남자의 행방을 찾아 5년간 '80년 광주의 시간과 사람들'을 만난다. 왼쪽 사진 속 남자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가 진짜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진짜 누구인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어쩌면, 80년 5월 광주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사건의 진실


결론부터 말하면, 광주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왼쪽 사진 속 남자는 광주에 살던 '김군'으로 밝혀진다. 그리고 그가 계엄군에 의해 총살된 것까지도. 고아였던 그는 광주 어느 다리 밑에 살던 넝마주이(헌 옷이나 헌 종이, 폐품 등을 주워 모으는 일이나 그런 일을 하는 사람)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김군과 함께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살아남은 이들은 고통 속에서 자신들이 겪은 그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김군이 계엄군에 의해 총살당할 당시, 바로 뒤에 있었던 시민군 최진수 씨는 김군 덕분에 자신이 살아남은 것이라며 39년간 떠안고 있던 죄책감과 마음의 고통을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겁이 많던 자신을 대신해 제일 먼저 앞장섰던 사람이 김군이었다고.


지만원은 지난 4년간, 김군 외에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사진 속 사람들을 실제 북한 사람의 얼굴과 비교하며 육백 여명의 '광수'를 만들어냈다(어디서 그렇게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냈는지, 그 노고와 정성으로 다른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영화 속에는 김군 외에도 '북한군 광수'로 지목받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북한군 광수로 지목했다는 것에 어이없어하는 전 시민군의 인터뷰를 보며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지만원이 북한군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광주 시민들, 무고하게 희생된 수많은 '김군'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청춘들이었다. 막걸리 한 잔에 기뻐할 수 있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즐거운, 겁 많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지만, 무모하고 용기도 있는, 누구보다 잘 살고 싶고, 행복하고 싶었던 한 인간...


2.jpg 영화 <김군> 스틸 이미지. 네이버 영화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작가와의 GV에서 한 관람객이 질문을 던졌다.

"전 양쪽 다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영화가 너무 감정에 호소하는 거 아닌가요? 몇몇 사람들의 흐릿한 기억만으로 사진 속 남자가 김군이고,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 않나요? 적어도 지만원 씨의 과학적인 연구를 반박하려면 좀 더 전문적인 방식으로 접근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영화가 좀 실망스럽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이런 내용의 질문이었다)


극장 안의 공기는 싸해졌다. 나는 그 관람객(공교롭게도 내 옆에 앉아 있었다)에게 화가 났다.

'당신, 대체 1시간 반 동안 영화를 어떻게 본 거야? 이 영화는 그렇게 접근하는 영화가 아니라고? 지만원의 과학적인 연구? 웃기고 있네. 말할 가치도 없는 지만원의 연구 따위에 반박하느라 소중한 영화적 시간을 할애할 순 없지... 이 영화는 지만원에는 1도 관심 없어. 39년 전 희생당한 수많은 김군들,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살아남은 김군들에 대한 영화라고!' (난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내가 감독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내게 그렇게 다가왔기에...)


강상우 감독은 침착했다. 영화를 만드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면에 단단한 힘이 생긴 것 같았다. 과학적이라고 하는 지만원의 연구는 사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게 아니라고, 그저 윈도우 프로그램으로 한 것일 뿐이라고, 이 영화를 통해 5.18 민주화 운동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죽은 자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 놀란 그 새들은 어디 있을까. 오래전 부활절 달걀을 먹으려고 친구들과 몰려간 성경학교에서 들은 것처럼, 천국이나 지옥 같은 이국적인 곳으로 날아갔을 것 같지는 않았다. 부러 무섭게 만든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흰옷을 입고 안개 속을 서성일 것 같지도 않았다.

- 한강, <소년이 온다> 중


영화를 보는 내내, 80년 5월 광주의 사진 속 얼굴들이 소설 <소년이 온다> 속 인물들과 겹쳐졌다.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학생들과 총을 들고 무장한 시민군들, 주먹밥을 건네는 여인들과 총에 맞고 쓰러진 시민들, 계엄군에 의해 폭행당하고 붙잡혀 가는 사람들... 상상으로만 떠올려보았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실제 사진 속에서 되살아났다. 희생자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광주 금남로, 전남도청 어딘가에 있을까? 아니면 보고 싶은 가족들을 찾아갔을까? 혹시 영화 <김군> 상영관 한 구석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있진 않을까?


5.18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당한 모든 영혼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살아남은 분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사라질 수 있길 기도한다. 그리고, 더 늦지 않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명백히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영화 <김군>은 소리쳐 외치지 않지만, 강하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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