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편지'와 '어젯밤 이야기' 사이 어딘가
고백하자면, 아이유를 좋아한다. 그렇다 한들 노래하고, 음악 만들고, 연기하는 아이유를 좋아하는 것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사석에서 아이유와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일상을 함께 한 적도 없으니 공개적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작업물을 접하며 좋아함의 감정을 키워나갈 뿐이다. 나는 실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다만, 내 안에서 만들어진 혹은 그렇다고 생각 되어지는 그녀가 있을 뿐이다. 사랑이라는 것도 대부분 그렇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다는 것은 그 대상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시선에서 기인한다.
내가 아이유를 바라보는 시선은 '밤편지'와 '어젯밤 이야기' 사이 무수히 많은 점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밤편지' 보다 더 깊은 지점엔 '개여울'이 있다. 보통 가수나 배우의 경우, 하나의 고정된 얼굴로 대중들에게 비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아이유에게는 다양한 얼굴이 존재한다. 다양한 얼굴이란, 그녀가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의 결을 말할 것이다. '밤편지'에서는 깊은 밤 작게 빛나는 반딧불처럼 사랑하는 이를 향한 서정적인 그리움을 표현하더니, '어젯밤 이야기'에서는 네가 미워졌다며 싫어졌다며 툭툭 내뱉는다('어젯밤 이야기'의 뮤직비디오 속 아이유의 표정은 그 심드렁한 정서를 잘 드러낸다). 또 '개여울'은 어떤가. 얼마 전 JTBC에서 방영된 <너의 노래는>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음악감독 정재일과 함께 개여울을 부르던 아이유는 20대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인생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여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이유의 서정성과 아이다움에서 나오는 자유로운 도발성, 성숙함을 좋아한다. 만약 이 가운데서 하나의 모습을 꺼내 이야기를 만든다면 나는 아이유의 어떤 얼굴에 주목할까?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페르소나>는 아이유를 향한 4명의 감독들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이경미, 임필성, 전고운, 김종관 감독은 각각 자신이 좋아하는 혹은 잘 표현할 수 있는 아이유의 얼굴을 골라냈다.
이경미 감독의 <러브세트>에서는 체력과 삶의 기술은 떨어지지만 어른의 세계에서 절대 지고 싶지 않은 발칙한 소녀의 모습을, 임필성 감독의 <썩지 않게 아주 오래>에서는 자유롭고 도발적인 주체로서의 신비한 모습을 담아낸다. 또한 전고운 감독의 <키스가 죄>에서는 어른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어른의 세계를 비웃는, 당돌하면서도 첫 키스에 대한 판타지를 품은 '츄리닝'이 잘 어울리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에서는 흑백 필름 속 청순하면서도 서정적인, 조금은 나르시시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4명의 감독들이 아이유의 얼굴을 끌어내는 방식에서 감독의 성향과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경미 감독의 에피소드에서 배두나와 아이유의 역동은 영화 <미쓰 홍당무>의 공효진과 서우를 떠올리게 하고, 임필성 감독의 에피소드에서는 영화 <헨델과 그레텔>이 보여주는 잔혹동화의 정서가, 전고운 감독의 에피소드에서는 영화 <소공녀>의 당돌함이, 김종관 감독의 에피소드에서는 <최악의 하루>나 <더 테이블> 등에서 그가 서촌 골목을 보여주던 방식과 겹쳐진다.
결국 영화 <페르소나>는 아이유를 통해 투사된 감독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영화였다. 그래서 아이유는 하나지만 영화는 4인 4색, 보는 맛이 각기 다르다. 감독이 지향하는 세계를 보여주는 데 있어 아이유라는 인물의 여러 가면이 어떤 영감을 불어넣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아이유의 가면은 아이유가 공적으로 소비되던 방식에서 반발짝(혹은 한 발짝) 정도 앞서 나아갔다. 그래서 익숙하면서도 진부하지 않다.
앞으로 아이유가 보여줄 얼굴의 스펙트럼은 또 어디까지일까. 실력 있는 감독과 작가들의 아이유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기대해본다. 그것은 배우 아이유에게도, 감독과 작가 그 자신에게도, 그들의 작품을 보는 대중들에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삶의 새로운 한 단면을,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새로운 결을 발견하는 짜릿한 경험이 될 것이다.
(덧붙임 : <키스가 죄>에서 아이유와 함께 출연한 심달기 배우의 인상적인 연기에 박수를...!! '월간 윤종신'을 넘어 문화적으로 다양한 행보를 보이는 영화 <페르소나>의 기획자인 윤종신 님께도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