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리의 딜릴리>를 보고 마카롱이 먹고 싶어졌다

세상을 구원하는 3가지 - 예술, 여성, 그리고 일상의 판타지

by 조혜영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 파리


예술과 혁명.리를 대표하는 단어를 꼽으라 하면 아마 이 두 단어가 아닐까.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보여주는 혁명의 공간으로서의 파리도 물론 좋지만 고백건대,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가 더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비포 선셋>, <새 구두를 사야 해>에서 보여주는 파리를 나는 사랑한다. 혼자 떠난 첫 배낭여행에서 설렘과 기쁨을 안겨준 파리는 내게 첫사랑 같은 도시다. 그러니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애니메이션 영화 <파리의 딜릴리>는 그런 파리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형태에선 <러빙 빈센트>와 맞닿는 지점이 있고, 벨 에포크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선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시퀀스를 떠올리게 한다.


풍요로운 벨 에포크(belle époque) 파리를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 평화로운 도시에서 '마스터 맨'이라 불리는 괴한들로부터 연이어 소녀들이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아프리카 출신의 소녀 딜릴리와 배달부 소년 오렐은 파리 곳곳을 누비며 사건의 비밀을 파헤쳐간다.

아프리카 출신 소녀 딜릴리와 배달부 오렐. 네이버 영화

그 과정에서 딜릴리와 오렐이 만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과학자들이다.


광견병 걸린 개에게 물린 오렐을 치료해주는 사람은 파스퇴르 박사이고, 납치당한 소녀들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들은 그 유명한 퀴리 부인과 당대를 풍미한 소프라노 엠마 칼베다. 그들 외에도 르누아르, 모네, 수잔 발라동, 마티스, 피카소, 콜레트, 로뎅, 까미유 끌로델, 드뷔시, 에릭 사티, 프루스트 등이 등장한다. <*아래 영상 참조>


(며칠 전,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 <콜레트>를 보았던지라 콜레트와 그녀의 동성 연인 미시가 등장하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파리의 딜릴리>에 등장하는 소설가 콜레트. 네이버 영화

드뷔시를 두고 엠마 칼베는 "요즘 뜨는 작곡가"라고 말하고,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도 아직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런 설정이 영화에 작은 재미를 준다.


소녀 딜릴리가 이끌어가는 여성 중심 서사


아프리카 출신의 딜릴리는 호기심 많고 열정 많은 여섯 살 소녀다. 어린 딜릴리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주고 감성과 지성을 일깨워준 인물로 '루이스 미셸'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Daum에서 검색하니 '루이스 미셸'에 대해 프랑스의 무정부주의자, 평생 동안 혁명적 사회주의 이념을 설파했다고 나와있다), 그녀가 딜릴리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현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영화 속에서 파리의 소녀들이 납치된 이유는 '마스터 맨'이라는 남성 조직이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억압하기 위해, 여자들을 네 발로 기어 다니게 만들어 의자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는 수단으로 교육시키기 위해서였다. 소녀 딜릴리를 포함해 여성 예술가(엠마 칼베)와 과학자(퀴리부인), 혁명가(루이스 미셸)의 주도로 납치된 소녀들을 구출하는 이야기는 여성 중심의 서사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실사인가, 애니메이션인가?


엔딩 장면에서 소녀들을 태운 배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날고, 엠마 칼베의 노래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모습은 동화 같은 판타지를 준다.

엠마 칼베가 하늘을 나는 배 위에서 노래하는 장면. 네이버 영화

<파리의 딜릴리>는 애니메이션 최초로 사진 기법을 활용했다고 하는데, 미셸 오슬로 감독은 4년간 파리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거쳐 벨 에포크 파리의 모습을 구현해 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얼핏 보면 실사 같기도 한 표현기법은 사실감과 판타지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분명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캐릭터들이 실제 인물처럼 느껴지며 스크린 속으로 더 몰입해 들어간다.


결국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예술, 그리고 여성


호기심 많고 열정 많은 소녀 딜릴리는 예술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작업에 감탄하며 수첩에 그들의 이름을 적는다. 배달부 오렐이 마스터 맨의 소굴로 잡혀 들어간 딜릴리를 찾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딜릴리가 예술가들을 만나며 이름을 적었던 메모들이었다. 딜릴리는 하수구 물 위로 그 메모들을 띄워 보내고, 메모를 발견한 오렐은 딜릴리가 그 근처에 잡혀있다는 힌트를 얻게 된다.


이 장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어려움의 순간,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술이 아닐까. 예술가들을 향한 딜릴리의 열정과 사랑(예술가들의 이름을 적은 메모)이 결국은 딜릴리 자신을 마스터 맨 소굴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세상을 구원하는 데는 남성 중심의 권력과 무모한 힘이 아닌, 여성의 지혜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따뜻한 정서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예술가들과 아름다운 영상, 음악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일상의 작은 판타지를 경험한 시간이었다. 마치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처럼, 딜릴리와 함께 벨 에포크 파리로 여행을 다녀온 듯한.


영화를 보고 나온 시각은 밤 10시. 2019년 서울의 현실 하늘에선 별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 또한 그대로 내 삶의 '벨 에포크'는 아닐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마카롱이 먹고 싶어졌다.

*애니메이션 영화 <파리의 딜릴리> 아티스트 영상

https://tv.naver.com/v/8488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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