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혜영 May 31. 2019

영화 <기생충>, 냄새의 사회학

냄새, 주관적 감각에서 계층을 나누는 잣대가 되다.

평소 냄새에 민감한 편이다. 타인이나 외부 공간에서 나는 냄새보다는 나와 내가 사는 공간의 냄새에 있어서 말이다. 향기가 좋은 섬유 유연제와 바디 로션을 고르고, 외출할 때는 향수를 뿌리는 것이 언젠가부터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거실과 화장실에 디퓨저를 놓고, 집에 손님이 올 때는 아로마 에센스가 수증기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무인양품 디퓨저를 2시간 전부터 켜놓는다. 특별히 깔끔하거나 유난을 떠는 성격은 아니다. 단지 냄새에, 아니 냄새를 느끼는 타인의 표정에 예민해진 결과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88 올림픽 때 지어진(재개발을 기다리는) 오래된 아파트이고, 묵은 세월만큼 쌓인 공간의 냄새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게 익숙한 일상의 냄새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무의식적 불안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의식하진 못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냄새가 계급이 될 수 있음을...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사는 반지하집 (출처. 다음 영화)

영화 <기생충>에서도 '냄새'는 두 계층을 극명하게 가른다. 영화 <기생충>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냄새'에 대한 이야기다.


반지하의 퀴퀴한 냄새가 몸에 밴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가족과 최고급 향수와 디퓨저 향기 속에서 살아갈 것만 같은 또 다른 가족.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그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로 판단하고 그들을 자신들의 삶으로부터 멀리 소외시킨다(그들을 곁에 둘 때는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그들이 필요할 때뿐이다).


영화 속 박사장(이선균 분)의 대사처럼,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무슨 냄새인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하철 타는 사람들한테서 나는... 누구나 다 아는 그 이상한 냄새.... 말이다.


냄새는 분명 주관적인 감각의 영역이지만, 냄새에 대한 좋고 나쁨의 판단은 냄새를 풍기는 대상을 객관화한다. 좋은 냄새(이를 우리는 보통 '향기'라고 표현한다)가 나는 사람을 만나면 같이 있고 싶지만, 안 좋은 냄새(이를 우리는 보통 '악취'라고 표현한다)를 풍기는 사람과는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고 싶다. 공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악취 나는 공간보다는 향기 나는 공간에 더 머물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냄새는 인간이 뿜어내는 가장 원초적인 무엇이다. 인간은 누구나(돈을 얼마나 버는지, 사회적 위치가 어떤지에 상관없이) 땀과 같은 각종 분비물을 뿜어내며, 음식을 소화시키고, 배설하고, 노화한다. 그 과정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그 냄새를 통제하는 방식에 있다.


가진 자는 냄새를 통제할 수 있지만, 못 가진 자는 냄새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냄새를 통제할 있는(그러니까 자신이 가진 재력으로 인공의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자는 교양 있고 문명화된 존재이지만, 냄새를 통제할 수 없는(그러니까 몸에서 이상야릇한 냄새를 뿜어내 옆에 있는 사람의 코끝을 찡그리게 만드는) 자는 교양 없는 야만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이선균 분) 가족이 사는 집 (출처. 다음 영화)

최근 '향기 마케팅'이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교보문고는 브랜드의 시그니쳐 향기를 만들어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고객들은 그 향기 속에서 책을 고르고 구매한다. 심지어 그 향수를 판매하기도 한다. 교보문고를 자주 찾는 나 역시도 그 시그니쳐 향기에 어느새 익숙해졌다


어쨌든 이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냄새'로 서로를 판단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회 속에서 냄새나는 계급으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 향수를 뿌리고, 싸구려 향수를 뿌리는 계급으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 더 좋은 향수를 뿌리고... 소외당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소외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 더 더 더 좋은 향수를 뿌려야 할지도 모른다.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말대로, '같이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냄새나는 자'와 '냄새를 통제하는 자'는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까? 냄새가 인간의 원초적 현상이듯, 계층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의 원초적 욕망인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에 가까운 냄새가 존재의 귀천을 가를 수 있다는 것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비극으로 치닫는 영화의 결말 또한 그래서 더 슬프다.


영화를 보고 나와 건물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데, '러시(Lush)' 매장에서 강한 비누향이 전해져 왔다. 여전히 향기는 좋았지만, 어쩐지 조금은 씁쓸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파리의 딜릴리>를 보고 마카롱이 먹고 싶어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