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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Jun 23. 2019

영화 <칠드런 액트>, 다가올 삶과 사랑에 대하여

feat. 시인 예이츠(W.B.Yeats)와 샐리가든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칠드런 액트(Children Act)

- 1989년 제정된 영국의 유명한 '아동법(The Children Act)'에서 따온 것으로, 법정이 미성년자(아동)와 관련된 사건을 파견할 때 최우선적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존경받는 여성 판사 피오나. 어느 날, 그녀의 삶에 두 가지 사건이 동시 발생한다.

하나는 남편으로부터 바람을 피우겠다는 통보를 받은 것(한동안 일에만 빠져 있던 피오나는 남편과 섹스는커녕 오붓한 시간조차 가지지 못해 왔다), 또 하나는 종교적 신념으로 수혈을 거부하는 미성년자에 대해 병원의 수혈 여부를 판결해야 하는 재판을 앞두고 있는 것.


남편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피오나지만 늘 그랬듯 일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다. 백혈병에 걸린 환자에게 수혈을 하지 않으면 얼마 안 가 죽게 된다며 반드시 수혈을 해야 한다는 병원 측 입장, 남의 피를 수혈하는 것은 영혼을 더럽히는 일이므로 생사는 신의 뜻에 맡길 뿐 절대로 수혈을 하지 않겠다는 18세 소년 애덤과 그의 부모 측 입장... 그 사이에서 피오나는 고민한다. 자신의 판결에 따라 한 소년의 생사가 달라질 수 있기에 피오나는 이례적으로 직접 소년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다가올 삶과 사랑을 위해...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애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판사 피오나. (출처. 다음 영화)


미성년이지만 애덤은 단호하다. 자기 주관이 확실하다. 절대로 수혈을 하지 않겠단다. 하지만 자신을 찾아온 피오나에게 조금씩 마음이 열린다. 피오나와 무슨 이야기든 대화를 나누고 싶다. 급기야 기타 연주까지 들려주는데, 예이츠의 시 'Down By The Salley Gardens'에 멜로디를 붙인 '샐리가든'이란 곡이다. 피오나는 애덤의 연주에 맞춰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한다. "가사가 있는 곡인 줄 몰랐어요." 그 순간, 애덤은 피오나와 무언가 교감을 했다고 느낀다.


그날 오후, 피오나는 '소년의 다가올 삶과 사랑을 위해' 병원 측의 입장에 손을 들어준다. 판결에 따라 수혈을 한 애덤의 건강은 회복된다(언제 백혈병에 재발될지 알 수 없지만).


어리고 어리석어라...


피오나를 미행해 만나러 온 애덤. (출처. 다음 영화)


하나의 사건이 마무리된 듯 하지만(물론 남편과의 문제가 아직 남아있지만), 영화는 이제부터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피오나 덕분에 생명을 되찾은 애덤이 계속 피오나를 찾아오는 것. 애덤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종교적 신념에 의문을 갖지 시작한다. 부모조차 아들인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종교적 신념을 택했다는 것에 대해 애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애덤이 지금 붙잡을 수 있는 것, 아니 붙잡고 싶고, 붙잡아야만 하는 것은 '자신의 다가올 삶과 사랑을 위해' 새 생명을 얻게 해 준 피오나뿐이다. 피오나와 인생에 대해, 시에 대해, 예술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애덤은 피오나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피오나에게 그 사건은 이미 끝난 과거의 일이다. 피오나는 스토커처럼 자신을 찾아오는 애덤을 차갑게 밀어낸다. 남편에게 그렇게 했듯이...


샐리가든 아래에서..


연말 행사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오나. (출처. 다음 영화)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연말 행사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기로 되어 있던 피오나에게 메모가 도착한다. 애덤이 죽어가고 있다고. 오늘 밤을 못 넘길 것 같다고. 그때부터 피오나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겨우 연주를 마치고 앙코르 요청을 받은 피오나는 준비한 곡이 아닌 다른 곡을 친다. 첫 만남에서 애덤이 연주했던 '샐리가든'이다. 그렇게 행사장을 뛰쳐나간 피오나는 병원에 입원 중인 애덤을 만나고(백혈병 재발한 애덤은 수혈을 거부한다. 이제 성인이 된 애덤에게 사법부의 판결은 필요 없다. 애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죽기로 결정한 것), 그를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음을, 너무 늦었음을 확인하고 오열한다.      


피오나는 뒤늦게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차갑게 일에만 몰두하느라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놓치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애덤의 장례식... 남편과 함께 걸어 나오는 피오나의 모습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전반부 휘몰아치는 몰입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영화를 품격 있고 우아하게 만들어준 것은 확실하다. 다만 아쉬움은 있었다. 서사적으로 볼 때, 피오나의 성장을 위해 애덤의 죽음이 이용된 것은 아닌지... 피오나가 진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피오나의 개인적인 삶에서 더 큰 희생이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닌지... (끝내 피오나는 남편의 사랑도 다시 되찾는다)


애덤이 피오나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충분히 납득되지만, 영화의 시선이 피오나를 따라가는 구성이기에 애덤의 고민과 방황이 피상적으로 보였다는 것도 한계다(개인적으로 애덤이라는 캐릭터가 궁금했고, 좀 더 보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영화 후반부부터 몰입감이 다소 떨어지고 마지막 충격과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을 효과적으로 살려내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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