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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Jul 07. 2019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동그라미들의 반란

네모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네모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블록이 있다. 그 안에 동그라미 모양의 블록은 들어갈 수 없다. 모서리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네모 모양으로 구멍 뚫린 블록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고 한다면, 모서리가 딱 맞아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에 나오는 '남자들'은 모두 네모 모양의 세상으로 들어갈 수 없는 동그라미들이다. 2년째 백수이거나 파산 직전이거나... 저마다의 이유로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다. 네모 모양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생겨먹은 게 동그라미라 들어갈 수가 없다. 


그들의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들어가지 않거나 혹은 들어가거나. 들어가지 않는다면 평생 루저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모 모양의 구멍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둥근 부분을 깎아 모서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 신화 속 '프루크루테스의 침대'처럼 팔다리를 잘라내거나 늘려야 한다(프루크루테스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히곤 침대 사이즈에 맞도록 작은 사람은 팔다리를 늘려서, 큰 사람은 팔다리를 잘라서 죽였다고 한다). 팔다리를 자르거나 늘려서 네모가 되는 것은 나 아닌 내가 되는 일이고, 그 과정은 나를 다치게 한다.

파산 위기에 처해 괴로워하는 사장 마퀴스 (출처. 다음 영화) 

영화 속 남자들은 조금 다른 방식을 택한다. 동그라미인 채로 나답게 사는 방식... 그래서 그들은 수영장으로 간다. 그들이 택한 것은 바로 수중발레다. 그들이 왜 수영도 아니고, 달리기도 아니고, 축구나 야구, 격투기도 아닌 수중발레를 택했는지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없다. 그저 각자 인생의 타이밍에 수중발레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 수영장으로 온 '남자들' (출처. 다음 영화)

수중발레라는 소재를 가져왔다는 측면에서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일본영화 <워터 보이즈>와 닮아 있고, 인생의 위기에 몰린 중년 남자들의 도전과 성장을 그리는 점에선 영화 <풀몬티>와 닮아 있다. 소재는 같지만 <워터 보이즈>가 10대 청춘들의 이야기임을 감안할 때,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의 주제와 정서는 <풀몬티>에 더 가깝다. 

수중발레를 연습하는 '남자들' (출처. 다음 영화)

오합지졸 남자들을 이끄는 선생님은 한때 수중발레 선수였으나 지금은 알코올 중독자 치료를 받고 있는 델핀. 완벽한 수중발레 파트너였던 아만다가 불의의 사고로 함께 할 수 없게 되자 델핀도 수중발레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 델핀은 수중발레를 연습하는 남자들에게 릴케의 시를 읽어준다. 델핀이 읽어주는 시를 들으며 굳어있던 남자들의 몸은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마음속에선 영감 비슷한 것이 자라난다. 

'남자들'에게 수중발레를 가르치는 전직 수중발레 선수 델핀 (출처. 다음 영화)

남자 친구에게 버림받고 방황하는 델핀을 대신해 휠체어에 앉은 아만다가 이들을 지도하게 되는데... 가르치는 쪽도 수업을 받는 쪽도 삶의 바닥을 딛고 있기에, 마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이들의 도전은 뜨겁다. 아무리 봐도 이들이 금메달을 딴다는 건 무모해 보이지만 그 노력이 너무도 진지하여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수영장 바닥에 발이 닿더라도 금세 물 위로 다시 떠오르듯, 이들은 수중발레를 통해 삶으로 다시 떠오른다. 수영장 안에선 네모일 필요가 없다. 물은 애초에 형태가 없으니까. 동그라미인 이들도 물속에서라면 자유로이 유영할 수 있는 것이다. 물속에서 이들이 군무를 통해 서로의 몸으로 동그란 원을 만드는 장면은 굳이 팔다리를 자르거나 늘려 네모의 세상에 끼워 맞추지 않더라도, 온전한 나(동그라미)로서 존재할 수 있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수중발레를 하는 '남자들' (출처. 다음 영화)

결국 이들은 금메달을 따낸다. 세상은 처음으로 이들을 위해 박수를 보낸다. 마침내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네모의 세상으로 들어갔다기보다는, 세상이 그들에게로 와 동그라미의 구멍을 만들어주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프랑스 대표 배우들이 출연한 초호화 캐스팅에 400만 관객을 사로잡은 프랑스 박스오피스 1위 작품이다. 코미디 영화를 기대하고 갔지만 솔직히 프랑스 유머 코드가 개인적으로 잘 맞진 않았다. 코미디 영화라기보다는 꽤나 진지한 중년 남자들의 성장 드라마로 느껴졌다(물론 간간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없진 않았지만).  


영화 속 남자들이 가정, 직장, 미래 등 저마다의 걱정을 안고 '수영장'으로 갔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영화관을 나오며 잠시 생각해 보았다. 영화 속 남자들의 모습에서 일정 부분 내 모습이 겹쳐졌기에...   


중요한 건, 네모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온전히 나만의 모양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도망가지 않고, 나만의 모양으로 네모의 세상을 향해 정면승부해보는 것이다.


문득 수영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 <4등>도 떠올랐다. 1등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1등을 하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1등을 포기하거나 포기한 척하는 것도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1등을 하는 소년의 이야기. 


올여름을 나만의 방식으로 한번 뜨겁게 보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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