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로코 캐릭터에 이런 남주는 없었다.
영화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의 휴 그랜트, <프리트 우먼>의 리처드 기어,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콜린 퍼스... 지금껏 우리가 아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남자 배우들은 대충 이랬다. 잘 생긴 건 기본값이고, 매끈한 슈트빨에 달콤하고 젠틀하며, 능력 있고 진실할 것만 같은 남자.
영화 <롱샷>에 이런 남자 주인공은 없다. 덥수룩한 수염에 불록 나온 배, 욱하는 성격의 사고뭉치, 교복처럼 매일 입고 다니는 'No답' 점퍼... 로코 영화의 주인공이라기보단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근한 남자에 더 가깝다. 눈 씻고 찾아보면 모든 사람에게서 적어도 한 가지 매력은 발견할 수 있듯이 우리의 남자 주인공 '프레드 플라스키(세스 로건 분)'에게도 매력은 있었으니... 바로 전직 기자 출신다운 글빨과 엉뚱한 유머감각이랄까.
'짚신도 짝이 있다'는 옛말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바로 그의 그런 '글빨'과 '유머감각'을 마침, 그가 욱하는 성질로 기자를 그만두고 나온 바로 그때, 딱 필요로 하는 여자가 있었으니 볼트-너트와 같은 필연적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녀가 최연소 미 국무장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이며, 차기 대권 주자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 완벽한 미모와 몸매, 미국을 뒤흔드는 지성과 카리스마를 갖춘 우리의 여자 주인공 '샬롯 필드(샤를리즈 테론 분)'에게도 남모를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유머감각이다.
그렇게 샬롯은 프레드를 자신의 선거 캠페인 연설문 작가로 고용하게 되고, 두 사람의 일과 사랑은 뜨겁고 화끈하게 시작된다.
옆집 누나의 화려한 변신
사실 이들의 만남은 첫 만남이 아니었으니... 때는 프레드가 13살이던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옆집 누나였던 샬롯은 바쁜 프레드 부모를 대신해 프레드의 베이비시터(보모)를 맡고 있었던 것.
(누가 알았겠는가. 자신이 돌보던 '베이비'가 20년 후 진짜 '베이비~♡'가 될 줄을...)
그때도 샬롯은 학생회장에 나가기 위해 연설문을 준비 중이었고, 13살 성에 눈을 뜬 프레드는 그런 옆집 누나와의 우연한 스킨십에 의지와 상관없이 아랫도리가 반응했던, 지우고 싶은 흑역사를 갖고 있었다.
흑역사인 것만 같았던 과거는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특히나 프레드가 샬롯의 선거 캠페인 연설문을 쓸 때 과거의 시간들은 소중한 재료가 된다.
샬롯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정치와 만들어진 이미지, 세련된 수사와 매너... 그 피로감 속에서 누군가 나의 소중했던 학창 시절을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위안이자 휴식일 수 있다. 샬롯에게 프레드가 그런 존재였다.
공식석상에서 프레드가 써 준 연설문을 말하듯 읽어 내려가는 샬롯은 어떤 대선 후보보다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한 지도자로 급부상한다.
하지만, 올라가는 자를 끌어내리려는 세력은 어디든 존재하는 법. 샬롯은 정치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거대 미디어 기업 오너, 파커를 만나 위기에 봉착한다. 파커가 원하는 대로 제안을 수락할 것인가? 만약 샬롯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파커는 자신이 입수한 '프레드의 자위 영상(프레드가 TV 속 샬롯의 연설 장면을 보며 화끈하게 자위하는 모습이 담긴)'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며 협박한다. 이를 알게 된 프레드는 자신이 샬롯의 정치 인생을 망치게 될까 봐 스스로 샬롯을 떠난다.
롱샷(Long Shot)?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우여곡절 끝에, 샬롯과 프레드는 재회한다(그 과정은 영화를 직접 보시길~). 샬롯이 파커와 타협하지 않은 대가로 프레드의 자위 영상은 온 국민에게 공개되지만,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은 감내할 수 있는 프레드다.
영화 제목 '롱샷'은 '승산 없는 시도'를 의미하는데, 쉽게 표현하면 오르지 못할 나무에 오르려는 것. 사고뭉치 '실직 기자' 프레드에게 세상 완벽한 '대선후보' 샬롯은 누가 봐도 오르지 못할 나무다. 하지만 프레드는 특유의 귀여운 매력과 진실함, 기자 출신 다운 뇌섹미, 화끈한 직진으로 대통령의 남자가 되는 데 성공한다. 남자판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할까. 남녀 캐릭터의 역발상이 신선하고 통쾌했다!
2시간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미국식 코미디로 관객을 웃기고 또 웃긴다. 2시간이 그야말로 '순삭'이다. OST로 흐르는 '보이즈 투 맨'의 노래와 새롭게 편곡한 영화 <프리티 우먼>의 주제곡 'It must have been love.'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운 여름,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로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주저 없이 <롱샷>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