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Everybody knows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비밀(秘密)
[명사]
1.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
2.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
누구나 안다면, 그건 비밀일까?
영화의 한국어 제목 <누구나 아는 비밀>은 제목 자체가 모순이다. 비밀이란 본디, 알리지 말아야 할 일이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뜻하는 것인데, 누구나 알고 있다니...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지 않은가.
영화의 원제는 <Everbody knows>. 누구나 알고 있으니 모두가 알고 있는 것. 비밀이지만 실은 비밀이 아닌 것. 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우아한 가족 미스터리
가장 행복해야 할 동생의 결혼식 파티에 정전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고, 큰 언니 라우라의 딸이 납치를 당한다. 짧았던 축제도 끝, 그 시간 이후 라우라의 딸을 찾는 과정에서 가족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숨겨온 과거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초반 결혼식 파티 장면에서 스페인 풍의 축제 분위기를 열정적으로 보여주던 영화는 라우라의 딸이 사라짐과 동시에 미스터리 플롯의 면모를 갖춰간다. 라우라의 딸은 왜 사라진 것인가? 납치를 당했다면 누구의 짓인가? 누가? 대체 왜? 라우라의 딸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살았을까, 죽었을까?
이런 궁금증들은 관객의 마음에서 자라나 133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쉴 틈 없이 끌고 간다.
딸의 납치범으로부터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받은 라우라. 가족들은 물론이고, 과거 연인이었던 파코까지 나서서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이 모든 것이 가족을 잘 아는 주변인에 의해 시작됐을 거란 이야기를 라우라가 우연히 듣게 되면서 가족 구성원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진 상황(심지어 라우라의 남편까지도). 가족 내부의 미묘한 긴장감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지고, 미스터리는 한층 깊어진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아서 비밀이 된 것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아서 비밀이 된 것이라고 하면,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게 아닐까?
비밀이란, 누군가를 향한 배려일 수도 있지만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혹은 게으름이거나 자기기만, 회피일 수도 있겠다.
영화가 전개되어 가면서 라우라의 가족 구성원은 아니지만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이자 과거 연인이었던 '파코'라는 인물이 미스터리의 중심에 있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비밀 하나가 드러난다.
납치당한 라우라 딸의 친부가 바로 파코라는 것. 정작 파코 본인은 몰랐지만 가족들은 다 알고 있었다. 단지 밖으로 꺼내 말하지 않았을 뿐. 파코는 뒤늦게 알게 된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납치범에게 줄 돈을 마련하려고 포도농장까지 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의 갈등으로 인해 파코 부부의 평화롭던 일상은 무너져 간다.
그렇다면 누가, 왜 라우라의 딸을 납치한 것일까?
힌트 1. 납치범은 가족 구성원이다.
힌트 2. 납치범은 라우라 딸의 친부가 파코임을 알고 있었다(파코 본인만 빼고 누구나 알고 있었던 사실이니까).
힌트 3. 납치범은 파코가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힌트 4. 납치범은 결혼식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고, 알리바이가 있다.
또다시 진실은 감춰지고.
영화가 끝나면서 라우라의 가족들에겐 '비밀' 하나가 또다시 생겨난다. 라우라의 딸을 납치한 '진짜 범인'에 대한 비밀. 눈치 빠른 가족 몇몇은 이를 알고는 조용히 숨기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다.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누구나 다 알게 될 비밀... 이제 가족의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앞으로 이어질 가족의 뒷 이야기로도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영화로 만들어지진 않겠지만, 만약 만들어진다면 꼭 보고 싶을 만큼.
포도와 와인의 차이?
영화 속 파코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포도와 와인의 차이가 뭔지 알아? 그건 바로 시간이야..."
포도에서 와인이 되는 것은 숙성... 다시 말해 성숙이며, 성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인생이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는 우리가 감추고 싶은 것, 감추고 싶지만 감출 수 없었던 것, 지금까진 잘 감추었지만 언젠간 밝혀질 것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비밀은, 비밀 가진 자를 때로 우아하고 신비롭게 만든다.
비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면, 비밀을 가져도 좋겠다. 하지만 무거워진 것은 땅에 떨어지기 마련이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제71회 칸영화제 개막작이었다. 아름다운 페넬로페 크루즈와 연기 장인 하비에르 바르뎀, 스페인 시골 마을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2시간이 아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