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시장에 들러 먹거리를 사 오고, 신문지를 펴놓고 마루에 앉아 채소를 다듬거나 멸치 똥을 빼내고, 낡은 부엌에서 무언가를 끓이고 볶고 조려내는 사람...
메인 셰프라고 하지만 할머니의 음식 솜씨가 내세울 만큼 뛰어나다거나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주는 비법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었다. 부엌 찬장 한 구석에는 미원이나 쇠고기 다시다가 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TV에서 방송되는 요리연구가 이종임의 요리 프로그램을 챙겨보았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방송 시간이 되면 고무장갑을 던져놓고 '테레비' 앞에 앉았다. 작은 공책에 서툰 글씨로 요리법을 받아 적던 할머니를 30년이 더 흐른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한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니 당시 할머니에게 이종임 요리연구가는 백종원 그 이상이었을 테다.
그렇게 할머니는 가족들을 위해 매일매일 다른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차렸다.
살림에 바쁜 할머니는 종종 내게 콩나물, 시금치 같은 채소를 다듬거나 멸치 똥 빼내는 일을 시키곤 했는데, 초등학생이던 나는 일이 하기 싫어 구시렁대면서도 결국은 신문지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다듬고 다듬어도 콩나물의 양은 왜 줄지 않는지, 똥을 빼내야 할 멸치의 수는 또 어떻고... 지겹고 재미없는 일을 시키는 할머니가 어린 나는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 지겹고 재미없는 일이 끝없이 반복되어야만 내 뱃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매일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할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자란 나는 어른이 되었고,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던 60대의 젊은 할머니는 90대의 노인이 되었다.
몇 번의 수술과 입원에도 강인하게 버텨오던 할머니가 올해 6월 다시 입원을 하셨다. 몸이 불편할 뿐 97세라는 나이에도 치매 없이 정신을 오롯이 챙겨 오던 할머니가 가끔씩 '딴소리'를 하신다는 얘기를 엄마로부터 전해 들었다(딴소리라고 하는 것은 할머니가 현재를 놓친 채 과거의 기억 속에서 하는 이야기들이다).
"애미야, 가스불 잘 봐라. 그냥 두면 콩자반 졸아서 다 탄다..."
삶의 끝자락, 의식을 놓친 채 병실에 누워 할머니가 한 딴소리는 콩자반이 탈지 모르니 가스불을 잘 보라는 말이었다. 엄마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듣고 나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콩자반이 뭐 대단한 거라고? 맛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흔하디 흔한 반찬...
하지만 할머니에게 콩자반은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고 있어야만 했던, 타지 않도록 불 조절을 놓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무엇이었나 보다.
비단 콩자반뿐이겠는가. '콩자반'이라는 단어는 할머니가 가족들을 위해 평생 동안 만들었던 흔하디 흔한 국과 찌개와 반찬들 모두를 포함한 이름일 것이다.
한겨울, 아침 생방송을 위해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집을 나서야만 하는 손녀에게 뜨끈하게 끓여준 김치콩나물국... 명절 즈음이면 엿기름을 걸러 전기밥솥에 만들어준 식혜... 마당에 깊이 묻은 장독대에서 갓 꺼낸 김장 무와 동치미 국물... 살 보단 국물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별미였던 꽃게 찌개... 집 근처 텃밭에서 할머니가 직접 기른 못생긴 호박으로 만든 호박전... '테레비'에서 보았다며 마른 김에 밥을 올리고 간장 대신 마요네즈를 뿌려주던 이름 없는 김밥... 열 살이 되도록 생일 때마다 선물처럼 만들어준 수수팥떡...
할머니가 해준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음식들이 나의 살과 뼈, 피가 되어 현재의 몸과 마음을 만들어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할머니가 지난 6월 27일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세상을 뜨기 며칠 전부터 식사를 삼키지 못하던 할머니는 당일 아침, 내가 사준 사과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세상과 영원한 작별을 하셨다. 그 사과주스가 할머니 생의 마지막 음식이었다.
나의 집 냉장고 안에는 차마 마시지 못한 사과주스 한 팩이 들어있다. 그 사과주스를 마셔버리는 날에는 왠지 모르게 할머니와의 추억마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마지막 사과주스를 삼키며 할머니는 어떤 맛을 느꼈을까?
돌아가시기 얼마 전, 병실 침대에서 할머니는 나의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생, 살아보니 허무하네..."
엄마는 그런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어머니, 허무하긴요. 그동안 잘 살아오셨으면서 왜 그런 말을 하세요?"
할머니가 맛본 마지막 사과주스가 쓰고 허무한 맛이 아닌 달고 정다운 맛이었길 바란다.
어린 날, 할머니가 내게 만들어준 음식의 맛이 그랬듯이...
아직 생이 많이 남아 있는 나는 앞으로도 수많은 음식들을 삼키고 소화시키며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떤 음식은 쓰고 허무하거나, 명치끝에서 내려가지 않을 만큼 거칠고 딱딱할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버겁게 소화가 안될 때마다 나는 어느 날 할머니가 내게 건넨 말 한마디를 기억해내련다.
그 한마디는 이렇다.
봉평에서 맛있게 먹은 메밀전병을 집에서 만들어보겠다며 야심 찬 시도를 했지만 결국은 엉망이 되어 버려, 망했다며 속상해하던 내게 할머니가 무심히 건넨 한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