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 잔에 담긴 마음

함께 마신 순간이 남긴 뜻밖의 울림

by 출항일지

최근에 마음 깊이 와닿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평소 속마음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친구였기에, 그 말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나는 종종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와인을 들고 간다. 내 주변에는 와인을 좋아하지만, 굳이 돈을 써가며 마시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늘 양해를 구했다. “이건 내 욕심이니, 그냥 함께 즐겨주면 된다”라고.

그중 한 친구는 나와 가장 자주 와인을 나눈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소주를 더 좋아했지만, 내가 가져온 와인을 기꺼이 마셔주었다. 그 친구와는 적지 않은 와인을 나눴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생색내지 않았다. “와인 값은 내가 낼 테니 밥값은 네가 계산해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그 말조차도 나와의 만남이 상대에게 부담이 될 것을 알기에..
그저 내 취향을 나누고 싶었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즐겨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기 때문이다.

물론 와인 값을 혼자 부담하는 게 전혀 가볍지는 않았다. 친구들이 부담 없이 즐겨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내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와인을 들고 가는 일은 누구의 강요가 아닌 나의 선택이었다. 또한, 생색을 낼 바에는 차라리 들고가지 않는게 낫다는 것이 내 마음가짐이었다.


그렇게 속으로는 내적 갈등이 일어나고는 했지만, 지인들이 내가 들고 온 와인을 맛있게 즐기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내 그 비용쯤은 넉넉히 감당할 만한 기쁨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와인에 빠져들수록 네가 얼마나 큰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는 덧붙였다. 예전에는 그저 ‘고맙다’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고. 내가 보여준 마음이 단순한 선심이 아니라, 넓은 품에서 비롯된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도 곱씹게 될 정도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생색내지 않으려 했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던 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여유가 허락한다면 지인들과 함께 와인을 나누고 싶다. 그것은 무턱대고 돈을 쓰겠다는 뜻이 아니다. 내게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그 정도 비용조차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소중한 관계를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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