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하루보다 소박한 일주일
종종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삶은 무엇일까 생각하곤 했다. 늘 가족을 위해 본인을 뒤로 미루며 살아오셨기에, 언젠가는 아버지께서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랐다.
가장의 자리에서 한 가정을 지켜낸 것은 아버지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자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 한편으로는 늘 걱정하곤 했다. 가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는 본인의 삶도 함께 지켜야 가슴속에 공허함이 남지 않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주제넘은 걱정일지 몰라도, 언젠가 아버지가 ‘후회는 없지만 정작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내 인생은 없었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실까 봐 두려웠다. 실제로 아버지께서는 나와 동생이 경제적 자립을 이룬 뒤에는 아주 잠깐 삶의 리듬을 잃으신 듯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성세대가 다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하기에는, 노후를 즐겁고 멋지게 보내는 분들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늘 아버지께 여쭤보곤 했다. 아버지의 진심, 그리고 소원을.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늘 기대와 달랐다. 딱히 없다는 말씀이었다. 그것이 정말 관심이 없으셔서인지, 아니면 좋은 것을 누려보지 못하셔서 그런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경험했던 새로운 세상을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억지로 파인다이닝에도 모시고 가고, 해외여행도 함께했다. 가장으로서의 삶이 아닌 아버지 자신의 삶에 조금이나마 알록달록한 색을 입혀드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화려한 풍경 속에서 웃어주시기를 바란 것이 내 욕심일 뿐인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 한편으로는 아버지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름다워 보였던 그 색깔이, 아버지께는 어쩌면 낙서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 이후로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체념한 뒤로는 더 이상 나의 행복의 기준을 아버지에게 들이밀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나자,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것이 특별한 하루의 화려한 색감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소박한 일주일의 잔잔한 색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아버지의 진심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고른 진한 색이 아닌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잔잔한 색으로 완성된 그림이, 비록 내 눈에는 단순해 보여도 아버지의 마음에는 가장 온전한 풍경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잔잔한 색으로 아버지와 함께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께서도 가족과 함께 조금은 화려한 색을 고르셔서, 우리만의 특별한 그림 한 장을 남겨주시기를 조용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