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야 할 때

화는 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

by 출항일지

보통 화라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된다. 참지 못해 터져 나오는 짜증, 관계를 깨뜨리는 말싸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화를 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후회할 일로 남기곤 한다.

하지만 때로는 침묵보다 화가 더 필요할 때가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다. 화에 대한 역치가 높은 편이고, 설령 화가 나더라도 웬만한 일은 참고 넘어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착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나를 착하게 보는 태도와, 그저 순진하게 보는 태도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러자, 내가 양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상대에게 편안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 어느 순간부터는 만만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이런 경우는 직장에서 상급자와의 관계에서 자주 발생한다. 승선 생활을 할 때, 나는 상급자에게 항상 깍듯이 대했고, 그게 예의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말투가 가볍게 바뀌고, 마치 나를 휘둘러도 괜찮다는 태도가 느껴졌다.

그때 나는 정색을 하고 그 태도에 맞섰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만약 그 순간을 그냥 넘어가버린다면 관계의 균형이 깨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크게 소리친 것도, 신경질을 부린 것도 아니었다.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분의 태도는 달라졌다. 다시는 그 선을 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화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관계의 균형을 바로잡는 수단이라는 것을.

만약 상대가 중요하지 않은 인연이라면, 가장 좋은 방법은 단순하다. 굳이 감정 소모할 필요 없이 그 순간을 웃어넘기고 더 이상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직장 동료처럼 피할 수 없는 인연이거나, 내가 아쉬워서라도 이어가고 싶은 관계라면, 반드시 화를 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존엄이 지켜지고, 관계가 다시 균형을 찾는다.

이 원리는 직장 관계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어리든 나이가 많든, 친구든 연인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존중이 사라지고 만만함만 남는 순간, 그 관계는 이미 균형을 잃는다. 그때 필요한 건 짜증이나 신경질이 아니라, 차분하고 명확한 화다.
여기까지만 해야 한다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알려주는 것이다.

화를 낸다는 건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키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상대를 존중하는 만큼 나를 존중해 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 착한 화도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순진한 바보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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