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나아가도 되고, 더 가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
행복은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사치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북한이나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나는 행복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글이라면, 내가 느꼈던 생각들을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삶을 버텨내는 것 자체가 우선인 사람들에게,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폭력이 될 수 있기에, 오랫동안 행복을 정의하는 일을 미뤄두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본능이 이끄는 방향대로 행복을 위해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제는, 조심스럽게나마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에게도 행복이란 단어에 거리감이 생기지 않는 방식이라면, 이 단어를 정의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먼저 나는 언제 행복하다고 느꼈는지를 돌아보았다. 돌이켜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에 대한 의문이 짙을 때가 내가 가장 행복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물론 그 시기에도 나름의 기쁨은 있었다. 다만 그것은, 짙은 안갯속에서 잠시 확보되는 몇 미터 남짓의 가시거리와 비슷했다. 당장은 걸을 수 있었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끝내 확신할 수 없었다.
반면에,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고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행복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더 많이 가진 상태도, 더 잘 증명된 삶도 아니었다. 그저 안개가 옅어져,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다음 한 걸음이 보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이란 특별한 조건이나 성취가 아니라, 삶을 전부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최소한의 확신에 가까운 것이다.
어떤 삶에서는 오늘을 무사히 건너왔다는 감각이 행복일 수 있고, 또 어떤 삶에서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취 속에서도 하루하루가 버거울 수 있다.
예전에는 행복은 성취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북한 주민에게는 행복은 멀리 있는 단어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에게는 행복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행복은 더 멀리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도 되고 멈춰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 온전히 다가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