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동안, 내가 지키려 했던 것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길이었다. 풍경도, 사람도, 길 위의 분위기도 왜 많은 이들이 인생 여행지라고 말하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좋았다.
하지만 그 매력과는 별개로 내 발걸음 속에서는 매일 여러 감정이 동시에 충돌하고 있었다.
산티아고의 매력을 발견하는 기쁨,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 그 모든 것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다른 감정이 함께 있었다.
'황금 같은 휴가에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이 감정은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나 스스로 선택한 여행이라는 책임감만으로는 끝까지 밀어내기 어려웠다.
몸은 생각보다 빨리 순례길에 적응했다. 하지만 마음은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매일 발에 물집이 잡힌 채로 4만 보 가까이 걷는 날들이 이어졌고, 비바람을 맞으며 5만 보를 걸어야 했던 날에는 정신적으로 한계에 가까워졌다.
이쯤 되면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조차 버거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감정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해 조용히 방향을 틀기 시작한다.
내가 스스로 가장 경계했던 장면이 찾아올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33일 동안 매일 어머니와 함께 걷는 여행에서 사소한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사소함이 어느 순간에는 봉합할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사람이기에, 짜증을 내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 배려했지만, 이 여행을 내가 모시고 온 만큼 어머니가 나에게 더 많이 맞춰주길 바랐던 순간도 있었고, 내 입장에서는 과도한 요구를 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생색을 내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짜증을 내는 순간 어머니의 마음에는 상처가 남을 것이고, 생색을 내는 순간 부담이라는 감정이 함께 남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상처를 입는다면 이 여행을 결심한 이유 자체가 완전히 퇴색되어 버릴 것 같았다.
짜증과 생색이라는 갑질로 인해 상처받고 초라해진 어머니를 상상하면 괜히 슬퍼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은 뒤로 미루더라도 어머니의 감정만큼은 끝까지 지키기로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여행의 성공 여부는 그저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어머니의 기쁨을 여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지켜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