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로 불릴 수 없었던 이유
까미노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나를 보며 효자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효자가 아니라고 답했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에 가까웠다.
어머니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알고 있었고, 도와드릴 수 있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다 하지는 않으려 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출발해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걷는 것을 원하셨는데, 조금 더 자고 싶었던 나는 그 소망을 들어드리지 못했다. 후회는 없지만, 그 사실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어머니는 팔을 다쳐 몸이 불편하신 상태였다. 그런 어머니를 최선을 다해 보살폈다면 나는 효자는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이 여정은 나에게 여행이 아니라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보살펴야 할 대상이 아닌, 여행 파트너로 대하려고 했다.
효자라는 역할 대신, 함께 걷는 사람으로서 이 길을 끝까지 같이 가는 것.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 대신 미래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해야 할 도리를 하고 책임지는 선택.
어머니의 섭섭함과 나의 본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었다.
이왕 어머니를 위해 온 만큼, 조금 더 희생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효자라고 불리고 싶지 않았다.
더 많이 해주는 것보다는 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함께한 시간을 최소 상처 없이 남기는 것이 나도, 어머니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