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을 가린다는 것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가르쳐 준 관계의 태도

by 출항일지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즐기게 된 뒤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블라인드를 좋아할까?


처음에는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기쁨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답이 전부였다면
나는 이미 블라인드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틀리는 순간의 민망함이 그 즐거움을 이겼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맞히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즐거웠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건 정답이 아니라 라벨이 사라진 순간 온전히 와인을 대하는 감각일 것이다.
라벨을 모른 채 마시면 와인의 본질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가격, 평가, 품종으로부터 오는 선입견 없이 오직 눈, 코, 혀에 닿는 느낌만 남는다.


물론, 솔직히 말해서 블라인드에서 맛있었던 와인들은 라벨을 확인해 보면 대개 유명하거나 상대적으로 더 비싼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먼저 내 감각으로만 그 와인을 느끼고 그다음에야 세상의 기준을 확인했으니까.
그 순서의 차이는 같은 와인이라도 생각보다 많은 차이를 느끼게 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듣게 된다. 평판, 배경, 험담, 기대 등등,,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오래 붙들지 않으려 했다.
내가 직접 마주하기도 전에 이미 맛을 정해버리는 일이 어딘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선박에서 근무할 때도 그랬다.
기존에 평이 좋지 않았던 선원은 실제로 만났을 때도 별로거나 잘한다고 하는 선원은 내 기준에서도 잘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기존의 평판과 상관없이 항상 상대를 편견 없이 대하려 했다.
편견 없이 상대를 바라보니 내 기준에 기존의 평판과 달리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도 많았다.

또한, 잘한다는 선원들에 대해서도 편견, 즉 기대를 지우고 바라보니 기대치로부터 그들이 느낄 수 있는 부담감을 지워줄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니 편견 없이 상대를 대하려 했던 내 마음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좋아하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라인드가 언제나 옳은 방식은 아니다.

세상의 기준을 배제한다는 오만함도 아니다.
라벨은 분명 도움이 된다. 우리는 정보의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먼저 느끼고, 그다음에 판단하고 정보를 적용하는 것. 그 순서만큼은 내가 지키고 싶은 방식이다.


생각해 보면 이건 자존감과도 닿아 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평가라는 '라벨'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주도권을 쥐는 것과 같다.
남들의 정답표를 빌려 누군가를 판단하는 건 어쩌면 선택의 무게를 나누는 일인지도 모른다.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 한 문장이 책임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내가 직접 느낀 감각으로 사람을 바라본다는 건 그 선택을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그런 선택은 설령 내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내가 한 선택에 기꺼이 책임을 지고 감당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블라인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와인의 맛 때문이 아니라 내 감각을 신뢰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직접 느낀 결로 누군가를 기억하고 싶어서.
그게 내가 지키고 싶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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