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낮추지 않는 마음
자존감과 자신감.
알 것 같으면서도 막상 글로 풀어내기에는 쉽지 않은 단어였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던 행동이 주변 사람들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자존감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해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걸 지켜줄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존감과 자신감은 빙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부분은 자신감이고,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부분은 자존감이다.
자신감은 쌓으면서 높아진다.
작은 성공, 반복된 성취, 인정받은 경험들이 위로 더해진다.
반면 자존감은 채우면서 깊어진다.
성공하지 않아도, 결과가 좋지 않아도
"그래도 나는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순간들이 빙산을 더욱 깊게 만든다.
자신감이 성취를 통해 올라간다면,
자존감은 내가 고른 선택과 감당을 반복하면서 깊어진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내 기준으로 선택하고, 결과가 좋지 않아도 도망치지 않는 것.
그 반복이 결국, 나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자존감은 나를 존중하자는 다짐이 아니다.
내가 나를 신뢰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자존감은 실패 속에서도 깊어질 수 있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적어도 나는 스스로 선택했고 내 선택에 대한 결과를 감당했다는 감각.
그 감각은 알게 모르게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빙산은 위가 높아 보여도 아래가 얕으면 거친 파도에 쉽게 기울어진다.
하지만 수면 아래가 깊게 뻗어 있다면 겉으로는 흔들려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신감은 스스로의 실력으로 쟁취하는 것이지 허울 좋은 말로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낮은 곳에 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실패라는 것은 시도에 대한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 자신의 존재 자체가 낮아진 것은 아니라고.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낮은 자리에 두지 않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건 회사와 나의 조건이 맞지 않았을 뿐, 내 존재가 부정당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극에서 에어컨은 쓸모가 적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에어컨이라는 존재 자체가 쓸모없어지는 건 아니다.
단지 남극이라는 환경이 맞지 않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능이 부족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능이 부족하면 고치면 되고 환경이 맞지 않으면 옮기면 된다.
중요한 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전원을 끄지 않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존중할 수는 있어도, 그 앞에서 스스로를 낮출 필요는 없다.
"내가 이 사람과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위아래로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면 위로 드러난 여유를 보고 감탄하지만 그 여유를 떠받치는 건 물 밑에서 수없이 나를 버리지 않았던 시간들이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지키려 했던 건 그들의 자신감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를 낮추지 않게 해주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