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침점 3

맞지 않는 옷

by 출항일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정해졌으니 앞만 보고 달리겠다는 다짐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매일같이 사수의 호된 말에 마음이 닳아갔고,
내가 생각한 '육상에서의 시작'은 생각보다 거칠고 차가웠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이내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바뀌었다.
그때,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인 24살 초임 3등항해사였던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도 매일 혼나고, 매일 욕을 들었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성장해서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아무리 욕먹어도 웃으면서 버텼다.

그러다보니 결국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혼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다.
내게 사직하라며 소리치던 상사는 어느 날 내가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는 잡초 같다고 표현했다.


그 말이 칭찬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곱씹을 정도로 나는 그 표현이 좋았다.
아무리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것.
포기하지 않고 이겨냈다는 뜻 같아서.


그 기억을 꺼내며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이번에도 버텨보자. 잡초처럼 끈질기게.'

하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길이 내 옷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더는 버텨야만 할 이유도 없었다.
초임 3등항해사 시절과 달리 나에겐 언제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1등항해사 커리어가 있었기에.

많은 고민 끝에,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결국 직장 사수에게 내가 왜 떠나야 하는지를 10가지 이유로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그 순간 나는, 맞지 않는 옷을 벗고 다시 나에게 익숙한 바다를 향해 마음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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