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항, 그리고 표류
굳은 마음으로 사직 의사를 밝혔지만,
논리적인 사수는 내가 떠나야 할 이유 10가지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선택은 네 자유지만, 최소 1년은 해보고 결정해 봐."
그의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었고, 나를 붙잡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사수의 진심 어린 조언에 나 역시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뒤, 조금씩 회사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응과는 별개로, 내 마음은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육지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각오가 필요한지,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지,
어떤 로드맵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지,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공부보다는 취미와 문화생활을 택했다.
승선할 때는 오직 커리어만을 바라보고 달렸고, 그 여정 자체가 즐겁고 뿌듯했지만,
육상에서는 적성에 맞지 않는 분야를 억지로 공부하는 일이 좀처럼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 대신 주말과 퇴근 후의 시간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나를 잠시 해방시켜 주는 귀중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퇴근 후 저녁과 주말, 연차, 공휴일이 있는 삶을 보내며 "이제야 바다에서 미뤄두었던 내 행복을 누리고 있구나" 하는 보상의 감정은
하루하루 내 마음속에서 뒤엉켜 있었다.
결국 나는 미래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그 당시의 소중한 행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육상에서 근무하는 동안 수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으며, 내게 주어진 자유를 온전히 누렸다.
무엇보다, 그 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해 준 사수가 참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회사에 입사할 수 없었고, 사직하려 했던 나를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소중했던 시간과 행복도 없었을 것이다.
사수는 때로는 나를 혼내면서도 심한 말을 한 것을 미안해하며 사과하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는 단순한 상사가 아닌 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은인 같은 존재였다. 사수의 말에 상처받을 때도 많았지만, 그런 말을 듣게 만든 내 부족함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더 클 정도였다.
그 덕분에 나는 내 삶의 속도를 조절하며
그간 미뤄뒀던 감정과 취향, 취미들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시에 미래를 잠시 유예했을 뿐 현재의 직장 생활에는 최선을 다했고, 그 기간 동안 업무적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 행복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그렇게 스스로 약속했던 ‘육상 근무 1년’이라는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결단해야 했다.
마음을 다잡고 은퇴할 때까지 육지에서 살아남을 각오로 다시 부딪쳐볼 것인지 아니면 이 길을 끝내고 새로운 방향을 정할 것인지.
결국 나는, 1년 3개월의 표류 끝에 다시 한번 ‘변침’을 결정했다.
주변 사람들은 3년은 근무해 보라고 만류했지만,
나는 그 표류의 시간 속에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3년을 더 채운다고 해서 그 본질이 달라지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흔들림 없이 내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늘 나를 응원해 주던 직장 사수들과 함께 일하면서 감사함과 동시에 죄송한 마음도 점점 커져갔다.
더 이상은 이런 어영부영한 태도로 이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팀 사업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지금, 새로운 사업이 시작되기 전 떠나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깔끔하고 정돈된 이별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