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4일 토요일, 아란
제주에서 일 걱정 안 하도록 내 모든 작업을 끝마치고 가야 한다는 강박에 비행기 타기 전까지 매일같이 야근했다. 며칠 밤 잠을 설쳤고, 무엇을 챙겨야 할지 정리할 틈도 없어 대충 보이는 걸 캐리어에 쑤셔 넣었다. 한 달 산다고 평소와 다르게 챙긴 것도 그다지 없었다. 고작 아침으로 해 먹을 오트밀이나 아가베 시럽 같은 것들을 더 챙긴 것 같은데 캐리어는 고통을 호소했다. 죽여 달라는 캐리어 위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지퍼를 잠갔다. 그렇게 수하물 용량 초과금 8,000원을 냈다. 제주도 입도 이틀 전에 미니멀리스트에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봤지만 역시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마침 여행 날짜가 딱 맞아 첫 일주일을 아란과 함께 제주시에서 보내게 됐다. 공항과 멀지 않은 레지던스에 각각 묵게 되었고, 집과 집 사이 거리는 도보로 십 분이었다. 그동안 여행을 가장 많이 같이 간 아란과 이웃사촌이 될 경험을 상상하면 가만히 있다가도 금방 재미있어졌다. 성격도 하는 짓도 비슷한 우리지만 다를 때는 또 달랐다. 예컨대 홀로 숙소에 묵는 것은 나에게 익숙한 일이었지만, 아란에게는 익숙지 않은 경험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나의 제주행에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아란의 모친은 내 걱정까지 해 주셨다. (나는 가끔 아란에게서 아란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이미 알던 친구처럼 부른다는 것 듣기를 좋아한다. 그 순간에는 꼭 3년 친구인 우리가 20년 넘게 한 동네에서 유년을 보낸 친구가 된 기분이다.)
나보다 한 시간 늦는 비행기를 예약한 아란이었지만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비슷했다. 차 밀린다는 모친 등쌀에 아란은 커피와 에그마요의 여유를 벌었고, 나는 차가 안 간다는 아빠의 걱정에도 여유롭게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사 먹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아란에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택시를 탔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내려 빗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숙소에서는 달콤한 포도 향기가 났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늑했고, 맥시멀리스트인 나와 걸맞게 수납공간이 넘쳐났다. 어울리는 집을 만난 것 같았다. 시작이 좋았다. 아란이 도착할 때까지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눈만 꿈뻑였다. 내 집. 한 달 동안 완전 내 집.
금방 아란도 아란의 숙소에 도착했다. 내가 짐을 처박아 두고 대충 컵을 물로 헹구고 냉수 한 잔을 들이켠 다음 느긋하게 쉬고 있을 동안 아란은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부지런히 모든 식기를 세척했다. 굵어진 빗방울을 뚫고 함께 저녁 장을 보러 갔다. 카트는 각자 끌었다. 나는 채소 코너를 빙빙 돌았고, 아란은 간편 식품 코너를 빙빙 돌았다. 돌아가는 길에 택시가 잘 잡히지 않길래 나는 금방 포기하고 버스를 기다렸고, 아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택시를 잡아 탔다. 내가 혼자 가지덮밥을 만들 동안 아란은 택시에서 배달 음식을 시켰고, 먹었고, 샤워까지 했다. 내 가지덮밥은 간장을 과하게 많이 넣어 가지간장국밥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느릿느릿 우당탕탕, 아란은 빠릿빠릿 술술이었다.
논알코올 맥주 두 병과 자색고구마칩을 품에 안고 아란의 숙소로 놀러 갔다. 내 숙소와 비슷한 구조였다. 가지간장국밥 탓에 냉장고 앞에 쪼그려 앉아 아란의 생수 한 병을 동냈다. 그런 사이 아란은 빔 프로젝터를 연결했다. 함께 예능을 봤고, 같이 과하게 몰입했고, 같은 장면에서 같이 웃었다. 웃으면서 그렇게 웃어 본 게 얼마만인지 헤아렸다. 아란과 함께 있으면 늘 웃을 일이 많았다.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도착하니 한 시 십 분이었다. 아란에게 더 오래 제주에 있어 달라고 졸랐다. 아란은 곧 다시 돌아올 것 같은 말을 했다. 나는 그 고민 없는 결단력이 좋았다. 같은 즐거움을 공유하고 있는 게 좋았다.
잠들지 못하던 서울의 새벽들이 무색하게 금세 잠이 들었다. 십 분 거리의 우리가 잘 어울린 날이었다.